"규제 샌드박스, 공무원이 임의로 합법·불법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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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 자리 스스로 박찬배달 오토바이 뒤쪽에 설치된 배달통에 디지털 광고를 붙이는 사업을 하고 있는 뉴코애드윈드의 장민우 대표(사진)는 지난 3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100대만 만들어서 1년간 시험해라. 문제가 없으면 규제 완화를 검토할 테니 규제 샌드박스에 순순히 응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장민우 뉴코애드윈드 대표
처음에 오토바이 10대로 제한
회의서 공무원들 상대로
규제 완화 설득했지만 안 통해
장 대표는 과기정통부의 요청에 답하는 대신 한국경제신문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공무원의 말 한마디로 합법과 불법이 결정되는 나라에선 사업을 하고 싶다 않다”는 게 그가 털어놓은 속내였다.“말 바꾸는 공무원에게 지쳤다”

장 대표는 “사전회의가 열린 지난 2월20일 행정안전부와 국토교통부 담당자들이 해온 첫 제안은 ‘오토바이 10대’였다”고 설명했다. 그와 민간 심의위원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10대’는 ‘100대’로 바뀌었다. 장 대표는 이 대목에서 설득을 중단했다. “한국에서 사업을 했다가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설명이었다.
정부가 지난 3일 새로운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장 대표의 주장은 그대로다. 그는 “제품 개발에 이미 15억원이 들었고 대량 생산을 위해서는 50억원을 더 투자해야 한다”며 “100대로 1년을 버티라는 것은 사업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지적했다.“해외에서는 주문 잇따라”
장 대표는 공무원들의 태도에서 절망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가 사전 심의위원회에서 “위원님은 이런 상황에서 사업을 하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사업성을 봐야 하는데 저라면 안 하죠”였다. “해외에 허가 사례가 없다”는 지적에 “미국과 캐나다, 유럽은 물론 가까운 중국에도 선례가 있다”고 답하자 다른 말을 꺼내며 설명을 가로막기도 했다.
과기정통부가 심의 보류 이유를 발표할 때 “디지털 광고가 뒤차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발표한 대목도 석연찮다는 설명이다. 오토바이 배달통에 상호와 전화번호를 넣는 것 자체가 불법인데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장 대표는 “동네 피자집과 중국집이 수십 년간 법을 어겨도 단속이 없다”며 “1960년대에 만들어진 옥외광고법은 사실상 사문화됐다”고 지적했다.규제 샌드박스의 피해자가 자신만이 아니라고도 주장했다. 같은 날 심의를 받은 해상 인명 구조용 조끼(스타코프)도 ‘60개 한정’ 판정을 받아 사업 진행이 힘들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공무원이 임의로 합법과 불법을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뉴코애드윈드는 해외로 본사를 옮기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배달통 광고에 대한 규제가 없는 데다 수요도 상당해서다. 장 대표는 “파나마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북미와 남미를 합쳐 1억2000만달러(약 1373억원)의 가계약을 성사시켰다”며 “한국을 고집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장 대표의 주장과 관련해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최대한 도와주려고 하지만 장 대표의 요구사항이 계속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부에 알리지 않겠다고 서약한 내용까지 언론에 공개하고 있는 점도 부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송형석/김남영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