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협약 비준' 노사정 합의 결국 불발…내일 EU 대응 주목

부대표급 협상에서 성과 못 내…정부, 내일 한-EU 무역위원회에 '빈손' 참석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시한을 하루 앞둔 8일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따르면 노사정은 이날 오후 부대표급 협상을 통해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접점을 최종적으로 모색했지만, 성과 없이 끝났다.

노사정 부대표급 협상에는 이성경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사무총장,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상근부회장,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 등이 참여한다.

이번 협상에서도 노사 양측은 평행선을 달렸다.경영계는 ILO 핵심협약 기준에 맞춘 노동자 단결권 강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노조 파업에 대응하기 위한 대체근로 허용과 사용자 부당노동행위 처벌 폐지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를 논의해온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는 당초 논의 시한으로 정한 지난달 말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자 시한을 이달 초로 늦추고 부대표급 협상을 해왔다.

부대표급 협상도 합의에 실패함에 따라 정부는 9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제8차 무역위원회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가시적인 성과물을 EU 측에 제시할 수 없게 됐다.EU는 한국이 한-EU FTA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章)'에 규정된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분쟁 해결 절차에 들어간 상태다.

분쟁 해결 절차의 첫 단계인 정부간 협의는 지난달 18일 끝났고 EU는 이번 무역위원회에서 가시적인 성과물을 내놓지 않으면 다음 단계인 전문가 패널 소집에 들어가겠다고 경고했다.

무역위원회가 열리는 9일을 시한으로 제시한 것이다.
EU가 전문가 패널 소집을 요청하면 3명의 전문가 패널이 구성돼 한국의 FTA 위반 여부를 따지고 권고안을 담은 보고서를 채택하게 된다.

이 경우 한국이 '노동권 후진국'으로 국제적 망신을 당할 뿐 아니라 EU의 다양한 보복 조치에 직면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정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에 관해 사실상 '빈손'으로 무역위원회에 나가게 됐지만, EU가 당장 전문가 패널 소집에 들어갈지는 불확실하다.

이번 무역위원회에 EU 측 수석대표로 참석하는 세실리아 말스트롬 EU 통상집행위원은 9일 무역위원회를 앞두고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나고 무역위원회 직후에는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만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정부와 국회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의지를 확인할 경우 EU가 전문가 패널 소집을 미룰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말스트롬 집행위원은 무역위원회를 마치고 기자간담회도 개최한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한국의 ILO 핵심협약 비준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 안팎에서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계속 미루면 EU와의 통상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는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는 게 옳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무역위원회에서도 정부는 철강, 중대형 상용차, 의약품, 삼계탕 등의 수출 여건 개선을 요청할 예정이지만, EU는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를 들고나올 것으로 알려졌다.한편, 경사노위 노사관계 개선위는 곧 전체회의를 열어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에 관한 논의를 종결하고 그 결과를 국회에 제출하는 방안을 포함한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