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 내실경영 진두지휘…고로제철소 '3代의 꿈' 이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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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탐구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은 2015년 6월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형 장세주 회장이 그해 5월 구속 수감됐기 때문이다. 그에게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형 대신 경영 전면에 나섰지만 마주한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실적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한때 9조원에 육박하던 매출은 6조원대로 추락했고, 2200억원 당기순손실을 냈다. 경기 부진과 공급 과잉 여파였다. 중국 철강업체의 저가 공세도 거셌다.
최악 위기 치닫던 시기 兄 대신
'구원투수'로 등판
부임하자마자 체질개선 착수
브라질 CSP제철소 정상화에 사활
철강업계서 유명한 '형제경영'
과감한 사업 구조조정장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부임하기 전 장 회장도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잘나가던 동국제강 실적에 ‘경고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2013년에는 포항 1후판 공장을 매각했다. 2014년 말에는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었다. 2015년 1월에는 알짜 계열사인 유니온스틸을 합병했고 사업 다각화를 꾀했다. 같은 해 4월에는 서울 수하동 사옥(을지로 페럼타워)을 4200억원에 매각했다.
갑작스레 바통을 이어받은 장 부회장은 추가 구조조정에 나섰다. 수익성을 높이는 게 최우선이라고 판단했다. 부임 2개월 만에 포항 후판 2공장 운영을 중단했다. 이 공장은 연 190만t 규모의 후판을 생산하던 곳이다. 수익성이 나빠진 후판 대신 영업이익률이 높은 냉연강판과 봉형강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전환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포스코 포스코강판 등 투자 목적으로 보유하던 상장사 지분도 정리했다.
프리미엄 건축용 컬러강판인 럭스틸을 전면에 내세웠다. 럭스틸은 장 부회장이 유니온스틸 사장이던 2011년 내놓은 제품이다. 럭스틸 출시 이후 컬러강판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수익성이 크게 좋아진 경험이 있었다. 이 같은 체질개선 효과는 이듬해인 2016년부터 빛을 보기 시작했다. 매출은 5조2600억원에서 5조원으로 소폭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1700억원에서 2500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수익성이 개선된 동국제강은 2016년 6월 산업은행 등 채권은행에서 재무구조개선 약정 종료를 통지받았다. 장 부회장은 재무구조개선 약정 조기 졸업을 통보받은 뒤 임직원에게 “이제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나왔을 뿐”이라고 강조하며 정상화를 위한 고삐를 놓지 않았다.고로제철소 3년 만에 궤도 안착
장 부회장은 공격적인 구조조정을 하는 동시에 브라질 CSP제철소 정상화에 사활을 걸었다. CSP제철소는 동국제강이 포스코, 브라질 철광석업체 발레와 합작해 건설한 고로제철소다. 고로는 철광석과 석탄을 원료로 쇳물을 생산하는 설비로 ‘철강의 꽃’으로 불린다. 수조원의 투자비와 고도의 운영 기술이 필요하다. 고로를 보유한 철강사가 세계적으로 많지 않은 이유다. 한국 기업 중엔 포스코와 현대제철, 동국제강만 고로를 갖추고 있다.
고로를 둔 일관제철소 건설은 고(故) 장경호 창업주와 고 장상태 2대 회장에 이어 3대째 내려오는 숙원 사업이었다. 동국제강은 1954년 고철을 녹여 철강 제품을 생산하는 전기로업체로 출발했다. 여러 차례 고로사업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1978년 인천제철(현 현대제철) 민영화 당시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현대그룹에 고배를 마셨다. 같은 해 정부의 제2제철소사업(현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선 포항제철(현 포스코)에 밀렸다.2005년 브라질 세아라주와 투자협약(MOU)을 맺으며 고로제철소사업을 공식화했지만 착공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브라질이 불황을 맞으면서 인프라 투자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2012년 착공에 들어간 CSP제철소는 2016년 용광로에 불을 지피는 화입(火入)식을 열었다. 화입식에 참석한 장 부회장은 “고로제철소를 세우겠다는 3대에 걸친 꿈이 비로소 실현됐다”며 “CSP를 세계 최고 제철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2017년 3억2600만달러의 영업적자를 냈던 CSP는 가동 3년 만인 지난해 매출 15억8900만달러, 영업이익 1억6500만달러를 올리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연 300만t의 슬래브를 생산하며 동국제강의 캐시카우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슬래브는 고로에서 나온 쇳물을 식혀 만든 널빤지 모양 철강 반제품이다.
하지만 지난해 회사 전체적으로는 실적이 다시 나빠졌다. 2015년 이후 3년 만에 순손실을 냈다. 원자재 가격 상승에다 일회성 자산재평가 손실이 발생한 탓이다. 장 부회장은 올초 시무식에서 임직원에게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라는 솔로몬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현재의 시황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미래에 대비하자”고 강조했다.여전히 굳건한 형제경영
장 부회장은 동국제강이 빠르게 안정을 찾은 비결 중 하나로 굳건한 ‘형제 경영’을 꼽는다. 장 회장은 지난해 4월 출소한 이후 매일 본사로 출근하고 있다. 아직은 미등기 임원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하지만 장 부회장은 회사 경영과 관련해 굵직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장 회장과 논의하고 있다고 동국제강 측은 설명한다. 장 회장이 수감 중일 때도 장 부회장은 매주 면회하며 의견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업계에서 두 형제의 돈독한 우애는 유명하다. 부친인 장상태 회장도 생전에 형제간 우애를 강조했고, 장 부회장은 장 회장에게 경영수업을 받기도 했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장 부회장은 9살 터울인 장 회장을 형이라기보다 아버지처럼 깍듯하게 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장 회장이 주도적으로 이끈 CSP제철소사업도 반드시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했다”고 했다.
장 부회장은 환일고와 육사(41기)를 졸업했다. 1996년 소령으로 예편해 동국제강 기획조정실 경영관리팀 과장으로 입사한 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지사로 옮겼다. 미국에서 근무하면서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마쳤다. 이후 포항제강소 지원실장, 관리담당 부소장을 거쳐 그룹 전략경영실장을 맡았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는 그룹 계열사인 유니온스틸 사장을 지냈다.
장 부회장은 올해도 내실 강화에 주력할 방침이다. 그는 지난달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2018년은 내진용 코일철근, 럭스틸 바이오 등 신제품 개발과 투자를 지속한 한편 CSP제철소가 첫 영업이익을 달성한 의미 있는 해였다”며 “올해는 기술과 품질을 더 높이는 질적 성장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오늘 점심번개 어때요"…張부회장의 소문난 '스킨십 경영'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사진)은 직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스킨십 경영’으로 유명하다.
장 부회장은 평소 점심 저녁으로 나눠 5~6명 단위 ‘번개 미팅’을 한다. 직원들이 필요한 물건을 눈여겨보다 깜짝 선물을 하기도 한다. 구형 휴대폰을 사용하는 한 직원을 지켜보다 최신 스마트폰으로 교체해준 적도 있다. 시무식 창립기념식 등 회사 공식 행사 진행 방식도 확 바꿨다. 장 부회장과 임직원들이 자유롭게 대화하는 스탠딩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한다.
직원 간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본사로 사용하고 있는 페럼타워를 개조하기도 했다. 국내 철강기업 최초로 2015년 도입한 스마트 오피스가 대표적이다. 동국제강 직원들은 아침 출근 때 안면 인식과 함께 일할 좌석이 무작위로 배정된다. 부서 칸막이를 없애고 협업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사무실 중간에 계단식 통로를 만들어 동선을 줄였다. 회사 생존을 위해 기업 덩치를 구조조정하는 힘든 상황에서도 직원 사기를 높이기 위해 다트룸과 테라피스트가 상주하는 헬스케어룸을 마련하기도 했다.
주주들과의 소통에도 각별히 신경쓰고 있다. 장 부회장은 지난해 국내 철강업계 최초로 주주 대상 공장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2016년부터는 주주총회에 기업설명회(IR) 방식을 도입했다. 장 부회장이 경영현황을 프레젠테이션(PT)하고 자유롭게 질문을 받는 형태다.
이 같은 소통 행보는 유니온스틸 사장 시절(2010~2014년)부터 시작됐다. 한 달에 하루를 ‘캐주얼 데이’로 정해 직원들이 자율 복장으로 근무하도록 했다. 보수적인 철강업계에서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장세욱 부회장 프로필△1962년 서울 출생
△1981년 환일고 졸업
△1985년 육군사관학교 졸업(41기)
△1996년 육군 소령 전역, 동국제강 입사
△1998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MBA
△2000년 포항제강소 지원실장
△2001년 포항제강소 관리담당 부소장
△2010년 전략경영실장(사장)
△2010년 유니온스틸 사장
△2015년~ 동국제강 부회장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