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일본경제 워치] 5G 설비에서 '차이나 프리' 재확인한 일본 통신사들

화웨이 이미지 /한경DB
일본은 5세대(5G) 이동통신 분야에서 한국에 비해 한발 늦은 모습입니다. 한국이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 서비스를 시행한 것과 대조적으로 일본은 지난 9일에서야 총무성 전파감리심의회가 NTT도코모 등 4개 이동통신사에 5G 주파수를 할당했습니다. 내년부터 지역별로 순차적으로 5G서비스가 도입될 계획입니다. 차세대 핵심 산업에서 주요국과 경쟁에 뒤쳐지면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부와 업계가 서두를 법도 합니다.

하지만 일본 통신사들 동향에서 한 가지 주목되는 점이 있습니다. ‘후발 추격자’인 일본 통신사들이 “싸고 성능이 좋다”고 알려진 중국산 통신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차이나 프리(중국 제품 없음)’을 선언한 듯한 모습입니다.아사히신문에 따르면 NTT도코모, KDDI, 소프트뱅크, 라쿠텐모바일 등 5G 통신 주파수를 할당받은 일본 4개 통신사는 5G 통신시설에서 화웨이 등 중국회사의 장비를 전혀 사용하지 않을 방침입니다. 일본 통신사들은 전파 할당을 받으면서 일본 정부에 기지국 등의 장비를 어떤 회사에서 조달할 것인지 등의 계획을 보고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세부 보고 내용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4개 통신사들이 “중국 제품을 사용하지 않을 방침”을 정부에 전달했다는 점을 넌지시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 통신사들의 중국산 통신장비에 대한 강경한 태도는 글로벌 각국의 화웨이 견제 움직임 중에서도 강도가 강한 편에 속한다는 평가입니다. 미국과 보조를 맞춰 중국 통신장비 업체 견제에 나선 일본 정부의 입장을 고려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분석입니다. 화웨이 장비가 가격 경쟁력이 있을 뿐 아니라 성능도 뛰어나다는 평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 5G에 대해 공격적 투자 움직임을 보였던 소프트뱅크의 경우, 지난해까지 화웨이와 손잡고 대대적인 투자를 준비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소프트뱅크와 화웨이는 협력을 강화하는 모습이었는데 미국 정부를 중심으로 화웨이에 대한 견제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결국 지난해 소프트뱅크도 화웨이와 거리를 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참고로 2015~2017년도에 소프트뱅크가 기지국에 투입한 금액은 총 767억엔이었는데 이중 화웨이 장비 비용이 206억엔, ZTE가 35억엔이었습니다. 2017년 이후 신설된 기지국에선 금액기준으로 화웨이 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60%에 달했다고 합니다.일본 통신사들이 이처럼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대동단결’한 모습을 보인 것은 미국의 대(對)중 견제 움직임을 의식하고, 미국과 보조를 맞춰나가기로 한 일본정부의 입장을 고려한 측면이 많습니다.

미국은 지난해 8월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화웨이 등 중국 업체의 통신장비 및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국방권한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중국산 통신 장비에 대한 정보유출 위험이 있다며 주요 우방국에도 중국산 통신장비를 제외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호주가 화웨이 등의 5G 진입을 금지했고, 일본도 지난해 12월 정보 통신기기의 정부 조달에서 사이버 공격 등 보안위험을 감소하는 방안을 의무화했습니다.

다만 세계 각국의 화웨이 포위 전선이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는 모습은 아닙니다. 유럽연합(EU)은 중국산 통신장비를 일률적으로 배제하지 않고 회원국에 판단을 넘겼습니다. 독일은 통신장비 입찰에서 “특정 기업을 배제하지 않을 방침”이라는 입장입니다. 이탈리아도 화웨이 등 중국산 장비 도입에 긍정적인 태도입니다. 5G 도입 초기 단계에선 4G장비와 5G장비를 병용할 필요가 있는데 유럽 4G 장비시장에서 화웨이 비중이 높은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입니다. 시장 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2018년 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 이동통신 인프라에서 화웨이 점유율은 40%에 달했습니다. 6%에 그친 북미에 비해 화웨이가 이미 뿌리를 깊게 내린 만큼, 화웨이 배제를 결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지적입니다.뒤늦게 5G시장 경쟁에 뛰어든 일본 업체들로선 화웨이 등 중국산 통신장비 배제라는 또 다른 과제마저 떠안은 모습입니다. 자사의 이익을 위해선 싼 제품을 냉큼 구매할 듯도 하지만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모습에서 일본 기업문화의 특성도 잘 드러나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