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레시트 달 착륙 실패…당당한 이스라엘 "2년 뒤 다시 도전"

착륙지점 10km 앞두고 엔진 돌연 고장
이스라엘 총리 "다시 도전"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 "실패하지 않았다"
베레시트 발사 당시 사진
이스라엘 민간 달탐사선 ‘베레시트’가 12일 새벽 달 착륙에 실패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당당했다. 오히려 자신감이 넘쳤다. 실패 소식이 알려진 직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년 뒤 다시 도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엘리 감바시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IAI) 한국지사장(사진)은 이날 “우리는 이미 우주에 가 있으며, 많은 것을 배웠다. 실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베레시트 모형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는 엘리 감바시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 한국지사장
베레시트는 히브리어로 ‘창세기’란 뜻이다. IAI와 이스라엘 우주개발 스타트업 스페이스IL이 공동 개발했다. 지난 2월 22일 미 플로리다주 NASA의 로켓 발사기지에서 민간 우주개발기업 스페이스X가 만든 로켓에 실려 달로 떠났다. 이달 5일엔 달 주위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미국 러시아 중국에 이어 네 번째로 달 표면 소프트랜딩(연착륙) 성공이 가까워져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러나 착륙지점을 불과 10여㎞ 앞두고 8개 엔진 중 하나가 고장이 났다. IAI는 이날 프로젝트 실패 후 서울 남대문 한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베레시트가 마지막으로 보내온 사진과 동영상 등을 공개했다. 착륙지점 182㎞를 앞두고 찍은 ‘셀프 카메라’엔 질주하는 베레시트 몸체가 선명했다.
발사직후 베레시트가 그린 궤도모습
베레시트가 마지막으로 보내온 셀카 사진. 이스라엘 국기에 '작은 국가 큰 꿈'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IAI 스페이스IL 등의 로고가 보인다
○달탐사는 다른 행성으로 가기 위한 ‘사전학습’

베레시트 높이는 약 1.5m, 무게가 0.6t이 채 안된다. 달 착륙에 성공했으면 달에 진입한 가장 가벼운 경량 우주선이 될 수 있었다. 비용도 많이 들지 않았다. 스페이스IL은 베레시트를 만들고 쏘는 데 약 1억달러의 돈을 썼다. 스페이스IL은 구글과 엑스프라이즈 재단이 지원한 달탐사 경연대회 ‘구글 루나 엑스프라이즈’ 참가팀이다.
베레시트의 달 궤도 진입 궤적. 길죽한 타원을 그리며 지구에서 멀어지다 달 궤도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출처 스페이스IL)
인류는 왜 자꾸 달에 가려는 것일까. 50년 전 닐 암스트롱이 처음 발자국을 남긴 후 무수히 반복돼 온 도전이다.

달탐사는 궁극적으론 지구 밖에 새 거주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가깝게는 달 탐사로 얻는 파생기술(스핀오프)이 어마어마하다. 이스라엘의 달탐사는 이밖에도 확고한 목적이 있었다. IAI는 “과학, 기술, 공학 그리고 수학(STEM) 분야에 대한 관심을 어릴 때부터 국민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베레시트를 쏘아올렸다”고 설명했다.

NASA는 “지구를 정확히 이해하고 인류의 존재공간을 지구 밖으로 확대하기 위해 달과학이 필요하다”며 2007년부터 연달아 달탐사 위성을 쏘아올리고 있다. EU 일본 인도 등도 착륙이 아닌 충돌실험으로 달 연구에 한창이다. 반면 한국은 아직 걸음마도 못 뗐다.
베레시트가 마지막에 보낸 달표면 근접사진
○자율주행차·로봇 기술의 원천

달 착륙은 정밀 항법기술이 필요하다. 목표지역에 정확히 내리기 위해서다. 그런데 달 주위에선 GPS(위성항법시스템)가 무용지물이 된다. 험난한 지형을 인식해 착륙지점까지 안내하는 대체기술이 있어야한다. 레이저를 이용해 주변지역 3차원 영상을 획득하는 ‘라이다(LIDAR)’가 그것이다. 라이다는 자율주행차의 눈이다. 방사선 폭풍 등 극한환경에서 검증된 라이다는 각종 로봇의 원천기술로 확장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설명에 따르면 지구 주위에 인공위성을 쏘는 건 달탐사에 비교하면 쉽다. 지구 중력 영향을 가늠할 수 있고 올려놓을 궤도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 탐사선은 지구와 달 사이라는 다른 중력권을 돌파해야 한다. 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추력도 인공위성보다 훨씬 더 크다. 인공위성보다 한 단계 높은 우주탐사 기술이다. 항우연 관계자는 “달탐사는 소행성 샘플 채취 후 귀환기술 등 향후 심우주탐사의 기반기술이 된다”고 설명했다.
베레시트가 마지막으로 찍어 보낸 달 표면 원거리사진
○각국은 ‘달탐사 전쟁’…걸음도 못 뗀 한국

각국은 숨가쁘게 달로 향하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유인 화성탐사를 공식화했다. 또 2025년까지 달 궤도를 도는 신개념 우주정거장이자, 우주탐사전초기지 ‘달 궤도 플랫폼-게이트웨이’를 만들 계획이다. SF영화 인터스텔라 등에 나오는 도킹용 우주선을 연상하면 된다. NASA는 지난해 4월 이 계획을 내놓으며 “태양계로 더 멀리 가기 위해선 우주정거장은 (우주비행사가 오가는 기간을)수주 또는 수개월이 아닌 며칠로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월 인류 최초로 달 뒷면에 연착륙한 중국은 내년 7월 화성탐사선을 발사할 예정이다. 2025년엔 유인 달탐사가 목표다. 냉전시대 우주탐사를 주도하다 경제사정으로 이를 오래 중단한 러시아도 내년 달탐사를 재개하기로 했다.
발사전 베레시트 실물을 점검하고 있는 이스라엘 연구진
한국은 2020년께 550㎏급 시험용 달 궤도선(탑재체)을 개발할 예정이다. 항공우주연구원이 달 궤도선의 설계 제작 조립 발사 등을 총괄하고 NASA가 돕기로 했다. 축적된 기술이 없는 만큼 해외발사체(로켓)로 시험한 후 한국형발사체(누리호:KSLV-2)로 쏘는 것이 목표다. 다만 언제 성공할지 현재로선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1단 로켓을 러시아에서 빌린 한국 첫 발사체 나로호(KSLV-1)의 시행착오 사례만 봐도 그렇다. 달탐사선 자력발사는 빨라야 2030년께 가능할 전망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