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변관식 '농촌의 만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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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근대 한국화의 거장 소정 변관식(1899~1976)은 일제 강점과 해방,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굴곡 속에서 세상의 명리에 연연하지 않고, 한국적이면서 현대적 미감을 갖춘 수묵산수의 새로운 경지를 일궈냈다. 건필·농묵의 수많은 묵점과 묵필로 점철된 그의 산수화는 예술이기 이전에 시간과 열정의 결정체이자 내재화된 삶의 방식이다.
1957년 완성한 ‘농촌의 만추’는 이런 삶과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소정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소정이 얼룩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를 공개 비판하면서 기존 화단의 비리와 결별을 선언하고 스스로 정직한 야인으로 살기 시작한 해 완성했다. 추수를 다 마친 늦가을 농촌의 풍경과 시골의 흙내음을 비교적 진하게 풀어냈다. 짧은 선을 문지르듯 겹쳐 그으면서 윤곽과 음영을 동시에 살려내고, 거기에 갈색을 입힌 색감이 곳곳의 진한 먹빛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나무와 집, 논두렁, 마른 풀을 진한 먹으로 대담하게 표현한 화면은 활달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그리는 부감법(俯瞰法)을 취하면서도 하늘을 과감하게 차단해 공간경영의 묘미도 살려냈다. 1939년부터 전국을 돌며 동양화의 근본인 수묵을 차곡차곡 쌓은 공력이 화면 곳곳에 다양한 뉘앙스를 풍기며 빛을 발한다.효율성이 미덕으로 칭송되고, 단순함이 미학의 표준이 돼버린 21세기에도 소정이 일궈낸 수묵화의 세계는 세월을 거스르는 생명력으로 다가온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