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양어선 선원에서 참치왕으로…김재철 동원회장 50년 항해 마쳐

히트 상품 '동원참치'로 성장…'인공지능 시대' 세대교체 위해 용퇴
동원그룹 회장직에서 16일 물러난 김재철(84) 회장은 한국 원양산업을 일군 입지전적 인물로 통한다.전남 강진 출신인 김 회장은 국립부산수산대학을 졸업하고 1958년 우리나라 최초 원양어선인 '지남호'의 실습 항해사로 먼 바다를 향해 처음으로 몸을 실었다.

그는 그로부터 3년여 만인 1960년 원양어선 지남2호의 선장이 됐고, 1969년에는 직접 동원산업을 세웠다.

김 회장을 포함한 3명으로 닻을 올린 회사였지만 50년 뒤에는 생활기업인 동원그룹과 증권기업인 한국투자금융그룹이라는 '거함'으로 성장했다.지난해 매출 7조2천억원을 거둔 동원그룹을 키운 밑거름은 간판상품 '동원참치'였다.

김 회장은 1인당 국민소득 2천 달러 시대가 되면 참치캔 수요가 생길 것으로 내다보고 1982년 국내 처음으로 참치캔 제품을 내놓았다.

당시 원양에서 참치를 잡으면 전량 외국에 수출했으나 김 회장은 고단백·저지방의 영양의 보고인 참치를 국내 소비자에게도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참치캔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참치캔 출시 2년 후인 1984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내놓은 참치 통조림 선물세트는 그해 추석 때만 30만 세트 이상 팔려나가면서 선물세트 문화에 돌풍을 일으켰다.

이 참치캔은 1994년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에 따른 한반도 정세 불안 우려 속에서 당시 라면, 부탄가스와 함께 품귀현상을 보이며 생활용품으로 입지를 굳혔다.

동원 참치는 출시 이래 약 40년간 지구 12바퀴 반을 돌 수 있는 양인 62억캔이 넘게 팔렸다.김 회장은 해양에 대한 풍부한 경륜과 지식을 바탕으로 한국수산회 회장과 원양어업협회 회장 등을 맡았으며 1999∼2006년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바다 생활과 사업 경험을 담은 '남태평양에서', '바다의 보고', '거센 파도를 헤치며' 등과 같은 그의 글은 초·중·고교 교과서에 실렸다.

김 회장은 이날 동원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전격 퇴진을 선언하면서 "'인생의 짐은 무거울수록 좋다.

그럴수록 인간은 성장하니까'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노력해왔다"며 파란만장한 자신의 삶을 회상했다.
그의 퇴진 발표는 그룹 사장단에조차 전날에야 알려질 정도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자연히 그가 물러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동원그룹 관계자 등에 따르면 김 회장은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이 범람하는 시대에 '새 기수'에게 그룹을 맡기고자 하는 뜻이 강했다.

세대교체 의지였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김 회장은 퇴임 후에는 재계 원로로 한국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방안을 고심하는 한편, 그룹에는 반세기 경륜을 살려 필요할 때 조언을 해 줄 전망이다.

고령이긴 했지만, 예상치 못한 시점에서 발표된 김 회장의 퇴진에 동원그룹 임직원들이 적지 않게 놀랐다는 후문이다.

김 회장은 전날 오전 매달 한 번씩 열리는 사장단 모임에서 퇴진 의사를 직접 알렸고, 오랜 세월 그와 함께해 온 그룹 사장단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김 회장이 물러난 동원그룹은 앞으로 차남인 김남정 부회장이 이끈다.

김 회장의 장남은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이다.

김남정 부회장은 일찌감치 그룹 식품계열 후계자로 낙점됐다.

그는 2004년 동원F&B 마케팅전략팀장, 2006년 동원산업 경영지원실장, 2008년 동원시스템즈 경영지원실장, 2009년 동원시스템즈 건설 부문 부본부장 등을 지내며 경영 수업을 받았다.

김 회장은 28년 전인 1991년 장남인 김남구 부회장에게 주식을 증여하면서 62억3천800만원에 달하는 증여세를 자진 납부해 세간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그룹 관계자는 "증여세 자진 납부 당시 김 회장은 다른 기업인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고, 더 많은 지분을 몰래 속여 나눴으리라고 의심한 당국에 세무조사를 받기도 했다"며 "이후 탈세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 주변을 머쓱하게 했다"고 소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