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공습도 피했는데…"프랑스의 영혼이 불탔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화염 1시간 만에 96m 첨탑 붕괴
본관 나무 지붕도 대부분 소실
성당 보수 중 부주의로 불 난 듯
프랑스의 상징이자 유럽뿐 아니라 세계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15일(현지시간) 대형 화재가 발생해 파리 시민은 물론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매년 관광객 1300만 명이 찾는 856년 역사의 대성당은 화마를 견디지 못하고 첨탑과 지붕을 잃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의 일부가 불탔다”고 슬픔을 표했다. 그는 “국민과 함께 성당 재건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성당 보수용 나무 설치물서 발화르몽드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50분께 파리 구도심 센 강변의 시테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 쪽에서 시커먼 연기가 나면서 불길이 솟구쳤다. 경찰과 소방대는 즉시 주변 관광객과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대부분 목조로 돼 있는 성당 내부 장식과 보수작업을 위해 설치한 나무 비계(높은 곳에서 공사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장치물)로 불이 옮겨 붙으면서 불길을 쉽게 잡지 못해 4시간 넘게 화재가 계속됐다. 이날 화재 진압에는 500여 명의 소방관이 동원됐다.

나무와 납으로 된 96m 높이의 첨탑은 불이 난 지 1시간 만에 무너졌다. 첨탑은 18세기 프랑스혁명 등을 거치며 파손됐으나 19세기에 복원됐다. 수많은 참나무 목재로 이뤄져 ‘숲’이라 불리던, 800년 이상 된 본관 지붕도 3분의 2 이상 소실됐다. 다만 성당 전면 두 개의 탑은 불길을 피했고, 주요 구조물도 보존됐다. 화재는 발생 8시간이 지난 16일 오전 3시쯤 완전히 진화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오후 8시에 예정됐던 대국민 담화 발표를 미루고 곧장 화재 현장으로 향했다. 그는 “노트르담은 우리 역사이자 문학, 정신의 일부이며 위대한 사건들이 일어난 장소, 삶의 중심이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화재 원인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지만 프랑스 소방당국은 방화보다는 성당 첨탑 보수작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2018년부터 대규모 개보수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부주의로 불이 났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 눈물 흘리며 “아베마리아~” > 프랑스 파리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15일(현지시간) 불길이 휩싸인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을 애처롭게 쳐다보고 있다. 시민들이 성가 ‘아베마리아’를 부르며 슬픔에 잠겨 있다. /AP연합뉴스
“프랑스 심장이 불탔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의 상징이자 유럽 가톨릭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1163년 착공돼 200년가량의 공사 기간을 거쳐 1345년 완공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성당 중 하나이기도 하다.180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황제의 대관식, 1996년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장례식 등 프랑스 중세,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과도 함께했다. 잔 다르크가 처형된 뒤 재심 재판이 열린 장소이기도 하다. 1831년엔 빅토르 위고가 성당과 동명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한국에선 ‘노트르담의 꼽추’로 번역)’를 발표하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유네스코는 노트르담과 주변 지역의 이런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해 센 강변을 199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2차 세계대전 중 파리를 점령한 독일 나치군도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해 대성당을 폭격하지 않았다. 가디언은 노트르담 성당을 ‘프랑스 그 자체’라고 표현했다.

파리 시민은 물론 세계 각국 시민과 주요 지도자들은 프랑스의 심장이자 인류의 유산에 불이 난 데 대해 충격 속에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프랑스 언론들은 “프랑스의 영혼이 불탔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교황청 등은 슬픔을 표하고 복원 희망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페이스북을 통해 “참담하지만, 누구보다 프랑스 국민들의 안타까운 마음이 클 것”이라며 “함께 위로하며 복원해낼 것”이라고 슬픔을 함께했다. 성당 재건을 위한 기부 활동도 이어지고 있다. 구찌, 루이비통, 로레알 등 프랑스 대기업들이 발표한 기부 액수 합계는 6억유로(약 7700억원)가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파리 시민들은 화재 직후 대성당 인근 다리 등에 모여 성가 ‘아베 마리아’를 합창하기도 했다. 파리 시민인 스테판 시뉴리(52)는 AFP통신에 “노트르담은 모든 전쟁, 폭격에도 살아남았었다”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슬프고, 공허하다”고 말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