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남북한 수명 격차

오형규 논설위원
자연법칙이 작용하는 과학실험과 달리 사회는 실험이 불가능하다. 실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수시로 행동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학자들이 주목하는 사회실험 대상이 있다. 같은 유전자·언어·문화를 가진 남북한의 분단 74년이 만들어낸 격차다.

시장경제와 사회주의 경제가 만든 남북한 격차는 23배로 벌어진 1인당 국민소득이 웅변한다. 대런 애스모글루 미국 MIT 교수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지적했듯이, 포용적 제도를 가진 한국이 ‘경제기적’을 이룰 때 착취적 제도의 북한은 ‘경제 재앙’으로 귀결됐다.그러나 더 심각한 격차를 보건·의료 분야에서 엿볼 수 있다. 최근 유엔인구기금(UNFPA)이 발표한 ‘2019 세계인구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남북한 기대수명 격차는 1969년 1년(남 60세, 북 59세)이던 것이 50년 만에 11년(남 83세, 북 72세)으로 벌어졌다. 지난 25년간 한국이 10년 늘 동안 북한은 4년 오르는 데 그쳤다.

북한의 영아 사망률은 1000명당 22명으로 한국(3명)의 7배다. 이는 공식통계일 뿐, 실제로는 100명을 넘을 것이란 탈북자들의 증언도 있다. 출생아 10만 명당 산모 사망률은 한국이 11명인데 북한은 82명이다. 어린이 빈혈이 25%이고 감염병 사망률은 3.5배, 결핵유병률은 5배다. 기생충 감염률도 청소년 35.5%로 한국의 약 12배다.

눈에 보이는 신장(身長)도 마찬가지다. 영국 임피리얼칼리지 연구팀에 따르면 한국의 20대 평균키는 남(174.9㎝)·여(162.3㎝) 공히 아시아 최장신에 든다. 지난 100년간 남자 15.1㎝, 여자 20.1㎝ 폭풍 성장해 성장폭에서 여자가 세계 1위, 남자는 3위다. 해방 전 한국보다 컸던 북한은 남녀 모두 3㎝가량 작다.유아·청소년은 격차가 더 확연하다. 탈북 청소년은 한국의 같은 또래보다 4~6㎝ 작다. 7세 남아에서 남북한이 12㎝나 벌어졌다. 120만 군대를 유지하는 북한은 몇 해 전 징집 하한 신장을 150㎝에서 142㎝로 낮췄다. 총을 어깨에 메면 끌릴 정도라는 얘기다.

1970년대만 해도 북한이 이렇지는 않았다. 1999년 발간된 미 CIA의 ‘북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1960년대 초 국가 예방접종 시스템을 만들고, 주민들이 노이로제에 걸릴 만큼 위생검사도 철저히 했다. 그러나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배급·위생·의료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만성 영양실조, 신장·체중 감소, 질병·감염 증가와 수명 정체가 이어지고 있다.

1990년대 초 독일 통일 당시 동독은 서독보다 수명이 남자 3.2년, 여자 2.3년 짧았다. 이를 극복하는 데 20년이 걸렸다. 남북한의 수명·건강·의료 격차를 좁히려면 얼마나 긴 세월이 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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