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한국의 스티브 잡스' 기대를 접게 만든 우리 기업들의 채용방식

초등생도 풀수 있는 문제인데
대졸자가 멘붕이라니
전공·직무 중심 채용방식 탓
인문학 지식 습득 멀리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20세기에 머문 기업 채용방식
사진=연합뉴스
“초등학생도 풀수 있는 문제로 우리나라 대졸자들에게 멘붕(멘탈 붕괴)이 왔다니…”

지난 14일 치러진 삼성직무적성검사(GSAT)의 ‘역대급 GSAT 난도에 수험생 비명’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또 다른 댓글은 “책을 조금만 읽어도 알 수 있는 어휘인데 정말 요즘 대학생들은 책을 안 읽구나”며 현실을 꼬집는 글도 달렸다.기사에서 언급 된 단어는 ‘젠체하다(잘난 체하다)’ ‘칠칠하다(일 처리가 반듯하고 야무지다)’ ‘서슴다(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다)’ 등이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단어는 아니다. 책이나 신문만 꾸준히 읽었으면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어휘다.

수험생 대부분도 온라인 취업 커뮤니티에 ‘기억에 남는 문제’라며 난이도보단 이색적인 문제로 꼽았다. 현장에서 만나본 수험생들도 하나같이 “어휘문제보다는 언어영역의 긴 지문속에 숨겨진 문맥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반응했다.

댓글에는 직무중심 채용의 결과물이란 분석도 나왔다. 한 독자는 “대기업들이 직무중심 채용을 하다보니 대학생들도 학업에 필요한 공부만 하고 독서를 안하게 됐다”고 지적했다.우리나라 대기업은 제조업이 중심이다. 그러다보니 채용은 이공계 기술직을 위주로 뽑는다. 주요 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때 ‘2대8’의 비율로 이공계생을 더 많이 뽑는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부터 삼성·현대자동차·SK그룹은 입사시험에서 상식·역사과목을 아예 폐지했다. 이공계생들의 부담을 덜 주기 위해서란게 이유였다.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선발한다는 명목하에 기업들은 이공계생 채용때 지원자의 전공학점을 중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최근 대기업의 채용 트렌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한 대학 취업센터장은 “4차 산업혁명은 모든 산업의 융합을 뜻하는데 이런 채용방식으로는 ‘한국의 스티브 잡스’는 영영 안나올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최근 중앙대 다빈치인재개발원은 꽤 흥미로운 조사 하나를 했다. ‘최근 5년간 중앙도서관에서 인문학 서적을 많이 빌린 이공계생들의 취업률’이다. 이 조사를 한 박철균 원장은 “결론은 인문학 책을 많이 읽은 이공계생이나 책을 안 빌린 이공계생간 취업률에 차이가 없었다”며 “기업들은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의 인문학적 상상력보다는 이공계 지식만을 보고 뽑았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 아마존에서의 12년 직장생활을 담은 책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를 쓴 박정준씨는 “입사때 면접관 다섯명이서 한시간씩 돌아가며 자신의 모든 인생을 정교히 해부하듯 인터뷰를 했다”고 말했다. 단순히 전공지식만 평가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우리 코 앞에 펼져지고 있는데 한국 기업들은 다시 20세기 채용방식으로 회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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