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황홀한 김정은'
입력
수정
지면A35
김태철 논설위원

북한의 최고지도자 우상화는 다른 공산독재국가와 차이가 많다. 옛 소련의 스탈린, 중국 마오쩌둥,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등은 자신에 대한 개인숭배를 강요하는 데 그쳤다. 개인숭배를 넘어 우상화·신격화하고, 세습왕조를 구축한 것은 김일성 일가가 유일하다.김일성 우상화는 1956년 반대파를 숙청한 ‘8월 종파사건’을 계기로 본격화됐다. 1959년 5월 ‘조선노동당역사연구소’가 발간한 《항일 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는 김일성 신격화를 시도한 첫 사례다. 이 책은 김일성을 축지법을 써서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고, 모래로 쌀을 만들고, 가랑잎을 타고 강을 건너는 만고(萬古)의 영웅으로 묘사했다.
김정일 우상화도 김일성 못지않았다. 조선중앙TV 등 북한 매체들은 1994년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하자마자 “전세(前世)에도 없었고, 후세(後世)에도 다시 없을 위인 중의 위인”이라고 했다. “위대한 지도자께서는 축시법(縮時法)을 써 과거와 미래를 오갈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영국 미술사학자 제인 포털 전 대영박물관 부관장은 2006년 《통제하의 북한 예술》에서 “김일성·김정일의 우상화는 자신을 신(神)으로 격상시킨 중국 진시황에 버금간다”고 비판했다.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신격화에 본격 나섰다. 최근 펴낸 《위대한 인간 김정은》이라는 책에서 “그이(김정은)께서는 승마운동을 할 때는 최대 속력을 내어 거침없이 질주하셨고, 바다에 나가시면 쾌속정을 몰아 파도 위를 날듯이 달리셨으며, 땅크(탱크)를 타면 조정간을 틀어쥐시고 무쇠 철마를 질풍노도와 같이 몰고 가셨다”고 찬양했다. “그이의 인간상은 ‘하늘이 내신 분’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고 황홀하다”고도 했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이런 김정은에게 ‘전체 조선 인민의 최고 대표자’ 등 새로운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했다.
김정은이 ‘친근한 수령’을 표방하며 “수령을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게 된다”면서 우상화 자제를 지시한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당시 “노동당 기본 과업이 김씨 일가 위대성 선전으로 남아 있는 한 그들에 대한 신격화는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 대로다. 김씨 일가 우상화는 혈통 아니고는 정통성을 찾지 못하는 북한 정권의 한계를 보여줄 뿐이다.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