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포퓰리즘 상징된 고대 로마 '빵과 서커스'

빵과 서커스
“시민들은 로마가 제정이 되면서 투표권이 사라지자 국정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정치와 군사의 모든 영역에서 권위의 원천이었던 시민들이 이젠 오매불방 오직 두 가지만 기다린다. 빵과 서커스를.”

고대 로마제국 초기 풍자시인 유베날리스(60~130년)가 쓴 글이다. 시인은 포식과 오락만 추구하는 로마의 쇠퇴가 멀지 않았음을 경고했다. 여기서 ‘포퓰리즘’의 대명사로 쓰이는 표현이 나왔다. ‘빵과 서커스’는 로마제국이 시민에게 무료 또는 염가로 제공한 식량(빵)과 오락(서커스)을 가리킨다. 오늘날 과도한 인기영합 정책이 논란을 일으킬 때마다 심심찮게 등장하는 어구다.토목공학자 나카가와 요시타카가 쓴 《빵과 서커스》는 고대 로마가 남긴 건축과 교량, 도로, 수도 등의 유형 유산을 통해 제국의 흥망성쇠를 고찰한다.

저자는 ‘빵과 서커스’의 문제점과 해악을 명확하게 짚으면서도 로마 멸망의 결정적인 원인으로는 보지 않는다. 포식과 오락에 취한 시민들은 나태해졌다. 위험성 높은 군역이나 힘든 육체노동을 기피했다. ‘빵과 서커스’를 체감할 수 있는 수도 로마를 비롯한 대도시로의 이주가 많아졌다. 대도시 과밀화와 지방 과소화가 일어나고 농업 생산 인구가 감소했다. 저출산 문제도 심각해졌다. 하지만 로마제국은 유베날리스의 경고가 나온 이후에도 한동안 번영을 구가했고 약 370년간 제국을 유지했다. 저자는 그 요인으로 다른 민족, 종교, 문화에 대한 관용과 출신 성분에 상관없이 인재를 등용하는 실력주의 등을 든다. 로마가 멸망한 요인도 여기서 찾는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고 이후 국교로 삼으면서 불관용과 이민족 차별 등이 심화돼 결국 패망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빵과 서커스’가 몰고온 문제와 부작용은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는 “복지정책이 잘 돼 있는 몇몇 국가에서 ‘빵과 서커스의 세계’와 비슷한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며 “반면교사로 로마제국 사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다”고 썼다. (임해성 옮김, 예문아카이브, 332쪽, 1만8000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