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잇단 군사행보…저강도 시위로 대미압박 나서나

내부적으론 북미관계 교착 속 '안보불안감' 해소하며 결속도 노려
집권 2기 권력을 재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을 향해 잇달아 저강도 군사시위를 벌이는 모양새다.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대북제재 완화가 물거품이 된 이후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제재 해제 문제 따위에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김 위원장이 실제 행동으로 이를 과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이후 첫 시찰로 지난 16일 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1017부대를 찾아 전투비행사들의 비행훈련을 지켜봤다.

이어 17일에는 국방과학원이 진행한 신형 전술 유도무기의 사격 시험을 참관하고 국방과학기술의 첨단화 등을 위한 목표를 제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8일 보도했다.조종사들의 비행훈련이나 전략무기가 아닌 전술 무기의 시험이라는 점에서 이틀 연속 저강도 수준의 군사 행보를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이 이날 김 위원장의 전술무기 시험 참관을 보도하면서도 사진을 일절 공개하지 않은 것도 미국 등 국제사회를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압박은 하는 저강도 대응 차원으로 보인다.

앞서 북한 노동신문은 전날에도 김 위원장이 평북도 신창양어장 시찰을 가는 길에 앞서 평남 소재 공군 부대에 들러 조종사들의 훈련을 참관했음에도 1면에는 양어장 시찰 기사와 사진을, 2면에 비행훈련 기사와 사진을 배치했다.김정은 위원장이 시정연설에서 3차 북미정상회담 용의를 밝히면서도 '대화 시한'을 올해 연말로 못 박으며 새 해법을 갖고 나와야 할 것이라며 미국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대화와 압박 병행전략이다.

그동안 제재를 대북 압박의 '보검'처럼 내세운 미국을 향해 '제재에 굴복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겠다'는 의지를 비록 저강도 군사 행보이긴 하지만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특히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이 북미관계 전반에 대한 중장기적 전략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국방력 강화를 위한 저강도 수준의 군사 행보를 이어간다는 방침을 마련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김정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한반도의 평화 기류가 공고한 것이 아니라며 "강력한 군력에 의해서만 평화가 보장"되는 만큼 "국방공업의 주체화·현대화를 완벽하게 실현해 국가방위력을 끊임없이 향상해 나갈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미국과 국제사회를 자극하고 반발을 사는 핵·미사일 발사 같은 고강도 군사 행위가 아닌, 군사훈련이나 신형 무기 개발 등 국가의 통상적 자위력 보강 수준으로 국한함으로써 대미 압박과 안보 그리고 내부결속까지 모두 챙길 수 있는 '일석삼조'를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동엽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신형 전술 무기 시험을 했다는 건 제재를 벗어나면서도 자기의 길을 가겠다는 대외적 압박도 있지만, 또 하나는 핵을 내려놓겠다는 것"이라며 "전술 무기가 역설적으로 핵 억지력이 아니고 재래식 억지력의 향상을 말한다"고 해석했다.

결국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을 계기로 순조로운 북미 협상이나 조속한 북미관계 개선 전반에 대해 기대와 미련을 접은 채, 제재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식으로 경제와 안보를 챙기면서 국정 운영을 해나가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이를 실행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음 주로 예상되는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도 미국의 제재 해제에 목을 매지 않으면서 외교적으로 미국을 압박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의 근본적인 비핵화 조치 이전에는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북제재 틀을 흔들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믿었던 중국마저 미·중 무역 전쟁으로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우회로가 필요한 김정은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러시아행을 선택한 셈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에 균열을 내고 1950∼60년대 중소 분쟁 가운데서 외교·경제적으로 어부지리를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을 자극하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북한이 최근 전통적 사회주의 국가와 교류·협력을 강조하며 라오스나 베트남 등 그동안 소홀했던 다양한 국가와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제재에 굴복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경제건설을 실현하려는 안간힘으로 볼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