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선 리디노미네이션 토론한다지만…정부·한은은 "계획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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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총재·경제부총리정부와 한국은행이 국회의 리디노미네이션(화폐 단위 변경) 논의에 제동을 걸었다. 물가가 낮다고는 하지만, 경제활력을 우선적으로 높여야 할 시점에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자칫 국론 분열로도 이어질 우려가 있는 리디노미네이션 공론화는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리디노미네이션 제동
이주열 한은 총재 입장 변화?
이 총재 “논의할 때 됐다”더니…이주열 한은 총재는 18일 서울 남대문로 한은 본관에서 금융통화위원회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리디노미네이션 추진 여부를 묻는 말에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고, 가까운 시일 내에 추진할 계획도 없다”고 답했다. 이어 “리디노미네이션은 기대 효과도 있지만 그 못지않게 부작용도 많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며 “한국을 둘러싼 대외 여건이 엄중한 상황임을 고려할 때 리디노미네이션보다 생산활력 제고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리디노미네이션은 정부가 경제활력을 제고하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입장에서 지금 논의할 단계가 전혀 아니다”며 “정부는 검토한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당초 이 문제에 불을 지핀 당사자가 이 총재라는 점에서 이날 반응은 다소 의아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는 지난달 25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을 묻는 말에 “장점 못지않게 단점도 따르기 때문에 논의하더라도 조심스럽게 할 필요가 있다”며 “정치권에서 먼저 논의할 사안”이라고 답했다. 이에 따라 평소 화폐 단위 조정에 긍정적 태도를 보여온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이원욱·심기준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 등은 다음달 13일 국회에서 한은과 함께 ‘리디노미네이션을 논한다’는 이름의 정책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한은 “금융실명제법 등 손질해야”다만 한은은 그동안 내부적으로 리디노미네이션 추진에 대해 상당한 검토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이 다음달 국회토론회에 앞서 이 의원 등에게 보낸 사전자료를 보면 알 수 있다.
한은은 이 자료를 통해 △경제·금융 거래 규모 확대에 따른 불편 해소 △기장, 계산 및 지급의 편의성 제고 △대외 위상 제고 △화폐 기본단위 구매력 회복 등을 위해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격 등에서 지나치게 ‘0’이 많은 불편함을 해소하고, 주요국 통화에 대한 환율을 한 자릿수로 조정해 상호 비교를 편리하게 하며, 소액면 주화를 줍지 않을 정도로 떨어진 화폐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다.
한은은 선결 과제로 국민적 합의 도출과 정부의 수행의지를 꼽았다. 옛 화폐 폐기 및 새 화폐 제조와 각종 지급결제시스템 수정 등에 비용이 들고, 국민 불편 초래로 부정적인 여론이 커질 우려가 있는 만큼 범정부적으로 각계각층의 지지를 얻어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한은이 정부와 사전합의 후 공론화를 진행하고, 이후 한국은행법 등 관련 법률 개정에 신속히 나서는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금융실명거래법을 개정, 국민이 익명으로 화폐를 무제한 교환할 수 있도록 해 반발을 줄이는 방안이 필요한 것으로 봤다. 상품가격의 이중표시제 시행을 위해 물가안정법과 소비자기본법 등 개정도 수반돼야 할 것으로 관측했다.아직 공감대 부족한 국회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국회 내부의 공감대도 아직 부족한 상태다. 한국경제신문이 한은을 소관하는 국회 기재위 의원 29명 중 연락이 닿은 16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리디노미네이션에 찬성하는 의원은 이원욱·심기준·박명재·심상정(정의당) 의원 등 네 명에 그쳤다. 심 의원은 “국내 자산 통계에 경(京) 단위가 들어갈 만큼 경제 규모가 커져 리디노미네이션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윤영석 한국당 의원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고, 경제에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며 반대했다.
김정호 민주당 의원도 “국회에서 리디노미네이션 논의 자체가 진행된 적이 없는 만큼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밝혔다. 여권 지도부에서도 ‘지금 당장 추진하는 것은 무리’라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도원/김소현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