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경영자 국적 초월시대

허원순 논설위원
2010년 이탈리아 인터밀란이 45년 만에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을 때였다. 결승전 선발선수 중 이탈리아 출신이 한 명도 없었던 게 화제였다. 영국 독일 등 유럽의 메이저리그를 누비는 스타 선수들은 국적을 초월한 지 오래됐다. 철저하게 실력 본위이다 보니 차범근부터 손흥민까지 한국 출신도 역량껏 종횡무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럽 축구의 기량이 앞서가고, 팬들은 명품 경기를 즐길 수 있는 주요한 요인이다.

프로 스포츠만큼 일찍부터 ‘노동시장’과 ‘고용계약’이 국제화된 영역도 별로 없다. 선수뿐 아니라 감독 코치도 그렇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거스 히딩크가 좋은 사례다. 그는 터키·러시아·오스트리아의 대표팀 감독도 지냈다. 감독을 맡았던 프로축구팀도 스페인에서만 3개다. 베트남의 ‘국민 스타’ 박항서 감독을 보면 한국 스포츠 리더들도 국제무대로 진출할 길이 충분히 열려 있다.국적 구별 없이 인적자원을 잘 받아들이는 또 다른 분야가 기업·경영계다. 개방과 국제화를 활용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발전 전략이다. 역시 미국이 앞서 갔다. 씨티그룹이 50세의 인도인을 CEO로 영입했던 게 12년 전이었다. 펩시콜라 다우케미컬 켈로그 알코아 등 외국인 CEO를 영입한 미국 기업은 일일이 꼽기도 힘들다. CEO 아래 일반 임원과 기술자로 가면 국적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게 미국적 전통이다. 이민을 기반으로 이종교배를 성공적으로 활용한 나라답다.

영국은 중앙은행 총재까지 캐나다에서 ‘수입’했다. 골드만삭스 출신의 마크 카니 총재는 캐나다 중앙은행에서 근무 10년 만에 총재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브렉시트의 혼란 속에서도 6년째 영국 금융계를 지키고 있다. 국적과 기업문화에서 보수적인 일본에서도 카를로스 곤 닛산 CEO의 장기집권이 돋보였다. 프랑스와 브라질 이중 국적인 그는 회사자금 유용 혐의에 따른 검찰수사로 곤욕을 치르고 있지만 20년 전 닛산을 맡아 살려냈다.

현대자동차가 닛산 출신 임원을 사장에 앉혔다고 해서 화제다. 스페인 태생으로 현대차의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가 된 호세 무뇨스 씨가 주인공이다. 푸조·시트로엥 대우 닛산을 거친 경력을 보면 말 그대로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이다. 지난해 현대차가 판매한 459만 대 중 84%(387만 대)가 해외에서의 성과라는 사실을 돌아보면 늦은 감도 없지 않은 인재영입이다. 우수한 경영자들은 국적을 초월하는 시대가 됐다.스포츠에서도 경영계에서도 생산성을 높이려는 순혈주의 깨기가 활발하다. 여야 정치권도 이런 노력을 눈여겨보면 좋겠다. ‘제발 정치인 수입 좀 하자’는 얘기를 농담으로만 들어선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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