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는 반도체학과 신설…삼성전자·SK하이닉스 '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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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깎는 정부·시간 끄는 서울대·숟가락 얹는 지방대문재인 정부가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반도체 계약학과(이하 반도체 학과)’가 첫발을 떼기도 전에 여러 난관에 부닥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체들과 협의해 온 서울대 내부에서조차 “지성의 전당이 단순 인력 양성소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며 반대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전국의 지방 국립대는 “수도권 대학에 정부 지원이 집중되고 있다”며 “우리도 만들어달라”고 기업, 정부, 국회 등을 들쑤시고 있다. 반도체 학과를 신설하는 대가로 정부가 대학에 지원할 연구개발(R&D) 예산은 예비타당성 심사를 거치면서 반토막이 날 지경이다. 자체 자금을 들여 핵심 인재를 선점하려 한 기업들은 정부와 대학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첫 계약학과 도입 서울대 “신중해야”21일 정부와 학계에 따르면 서울대는 이번주 공대 학사위원회를 시작으로 반도체 학과를 개설하기 위한 내부 절차에 들어간다. 반도체 학과는 서울대가 학부에 계약학과를 도입하는 첫 사례여서 학칙 개정이 필요하다는 게 서울대 측 설명이다. 다음달 초 열리는 공대 전체 교수회의에서 승인을 얻은 뒤 다른 단과대 교수들도 참여하는 △학사운영위원회 △학사위원회 △평의원회 △이사회 등에서 학칙 개정에 대한 동의를 받아야 한다.
당초 사업을 처음 추진할 당시엔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육성한다는 명분이 있는 데다 이미 다른 대학에도 있는 ‘채용 조건형 계약학과’ 제도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현실은 달랐다. 사전 의견 수렴 과정에서 인문대 등 일부 단과대를 중심으로 “특정 기업의 채용을 위해 새로운 학과를 만드는 게 서울대 존립 목적에 맞느냐”는 반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학과 설치로 인한 수혜를 대부분 공대만 볼 가능성이 큰 것도 다른 단과대 교수들이 못마땅해하는 이유다.
대학 본부도 “앞으로 계약학과 설립이 잇따를 수 있다”며 신중한 분위기다. 서울대 공대의 한 교수는 “각 단과대 의견을 모두 수렴하다 보면 학칙을 개정하는 데만 1년 넘게 걸릴 것”이라고 꼬집었다. 서울대 공대 교수들도 반도체 학과가 신설될 가능성을 반반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는 전언이다.지방 국립대 “수도권만 지원하냐”
기업들을 더 난감하게 하는 건 지방 국립대다.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데 왜 수도권 대학만 혜택을 보냐”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서다. 한 기업 관계자는 “지방 국립대들이 인맥을 총동원해 반도체 학과 개설에 매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지역의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도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관련 기업뿐 아니라 청와대와 정부, 국회 등에도 민원을 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염두에 둔 대학은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KAIST 등 네 군데 정도다. 이들 기업은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학과를 개설하려 하는데 난데없이 지역 균형 발전 논리가 개입됐다”며 당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반도체 학과에 대한 여론이 나빠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학과 개설을 추진해 온 정부는 혹여 불똥이 튈까 봐 “반도체 학과는 대학과 기업이 자율적으로 정할 현안”이라며 발을 빼고 있다.대학과 기업들은 정부에 대해서도 “도대체 신뢰가 가지 않는다”며 볼멘소리를 내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비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을 높여 ‘메모리 반도체 편중’ 현상을 완화하는 방안을 신속히 내놓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달 말 발표할 정부 대책의 핵심 방안 중 하나가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한 대학 R&D 지원이다. 정부와 반도체 업체들은 100억원씩 연간 200억원을 7년간 투입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 1400억원 규모다.
하지만 예비타당성 심사를 위탁받은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은 “기존 지원 사업과 중복되고 뚜렷한 기대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정부가 요청한 R&D 예산을 삭감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대통령이 강조하는 비메모리 반도체 R&D 예산도 깎는 마당에 정권이 바뀌면 반도체 학과가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좌동욱/김동윤/서민준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