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에게 잊혀지면 끝"…유통업계, 처절한 '특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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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도전·국민가격·더싼데이…특가(特價)와 뉴트로(새로운 복고). 올봄 유통·식품업계의 키워드다. 상식을 깬 가격에 파는 특가, 추억을 불러내는 뉴트로엔 공통점이 있다. 잊히면 사라지는 운명에 처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에 가깝다. 특가 전쟁은 소비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쿠팡이 촉발했다. 다른 e커머스 업체들은 생존의 위기에 몰리자 특가전략을 들고나왔다. 20여 년간 유통을 지배했던 이마트 등 대형마트는 특가의 다른 이름인 ‘초저가’로 승부수를 던졌다. 식품·패션 업계에 번지는 뉴트로는 이중적이다. 40~50대 ‘옛 소비자’들에게는 ‘옛 상품’의 추억을 돌아보라고 속삭인다. 10~30대에게는 ‘경험하지 못한 시간의 신선함’으로 다가간다. 특가와 뉴트로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생존을 건 경쟁에 봄을 맞은 소비자는 즐겁다.
'로켓 배송' 앞세운 쿠팡 공세에
e커머스 업체들 '특가'로 맞불
티몬 '스토케 유모차' 반값에
‘극한 도전’ ‘반값 특가’ ‘국민 가격’ ‘더싼 데이’ ‘인생날’….올 들어 국내 주요 유통업체들이 하고 있는 마케팅 행사다.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부르지만 이들이 내세우는 것은 하나다. 특별하게 싼 가격, ‘특가’다. 스마트 소비자의 등장과 쿠팡 등이 시작한 가격경쟁의 여파다. 과거처럼 1000원짜리 할인 쿠폰을 안겨주거나 10~20% 할인해 주는 것으로는 소비자를 머물게 할 수 없다. 스마트한 소비자들은 실시간 가격 비교를 통해 이 정도 할인은 금세 찾아낸다. 눈에 뜨이려면 30~40% 세일은 기본이다. 항공권을 1000원에 판매하는 등 사실상 공짜로 나눠 주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라도 소비자를 끌어와야 한다는 절박함이 이들을 특가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시도때도 없이 특가
특가 경쟁은 e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다.티몬은 22일 0시부터 파격 특가 행사를 시작했다. 1000여 개 상품을 한 시간 단위로 특가에 선보였다. 나스 립스틱 1666개를 56% 할인한 1만1900원에, 스토케 디럭스 유모차 80개를 반값인 42만원에 판매하는 식이다. 티몬은 올 들어 시도때도 없이 특가 행사를 하고 있다. ‘타임 특가’란 이름을 붙여 불쑥 상품을 내놓는다. 작년 위메프에서 티몬으로 옮긴 이진원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주도하고 있다.
‘특가 원조’ 위메프는 원래 5월 5일처럼 달과 날이 겹치는 날 ‘특가 데이’ 행사를 했다. 요즘은 아니다. 지난 10일 갑자기 ‘더싼데이’를 내걸었다. 할인만 하면 품절되는 애플 에어팟을 반값인 7만9000원에, 삼성 블루스카이 공기청정기를 12만9000원에 판매했다.여간해선 특가 행사를 하지 않는 인터파크도 대응에 나섰다. 17일 ‘인생날 프로모션’을 했다. 도서·여행·티켓 등을 파격가에 풀었다. 티웨이항공 제주도 편도 항공권이 1000원에 불과했다. 서울 롯데호텔월드 숙박권은 78% 할인된 9만9000원, 뮤지컬 ‘그날들’ A석 2장이 80% 저렴한 2만4000원에 나왔다.전방위 특가경쟁
e커머스를 넘어 오프라인 매장, 패션몰, 배달 앱(응용프로그램)으로 특가 마케팅은 확산되고 있다.배달 앱 국내 1위 배달의민족은 지난 15~19일 ‘치킨 0’원 행사를 했다. 22~26일에는 ‘짜장 0원’ 행사를 진행한다. 1만원 할인 쿠폰을 행사 기간 오전 11시, 오후 5시에 선착순 5000장씩 푼다. 이마트는 이달 들어 ‘블랙이오’로 맞불을 놨다. 작년 11월 블랙프라이데이 행사 때 ‘이마트에 오면 대박’이란 의미로 했던 행사가 성과를 내자 반년 만에 느닷없이 이 이름을 썼다. 롯데마트가 다음달 1일까지 하는 ‘극한가격’ 행사도 특가 행사다. 세제, 비빔면 등 16개 품목을 정해 이마트 쿠팡보다 싼 가격에 판다.
패션몰 중에선 LF몰이 적극적이다. ‘오늘만 특가’란 별도의 메뉴까지 내놨다. 22일에는 오메가 몽블랑 태그호이어 스와로브스키 등 명품 시계와 주얼리 브랜드를 대거 할인 판매했다. 할인율은 오메가 씨마스터 플래닛은 40%, 티쏘 레이스 쿼츠 63% 등이었다.
“충동구매 유도한다” 비판도
특가 행사는 성과가 있었다. 티몬은 지난 1일 특가 행사 ‘티몬데이’ 때 역대 최대 하루 매출을 달성했다. 작년 12월 3일 티몬데이 때 거둔 종전 최고 기록 대비 매출은 60%, 구매 건수 42%, 구매량은 25% 늘었다.
위메프도 특가에 힘입어 올 1분기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28.6% 증가한 1조5900억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상품 수와 시간을 정해놓고 판매하다 보니 구입하지 못한 일부 소비자들이 크게 반발하기도 한다. ‘미끼’처럼 상품을 내세워 쇼핑몰에 들어오게 하거나 매장을 방문하게 한 뒤 실제론 다른 상품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충동구매를 유도한다는 비판도 있다.그럼에도 당분간 특가 경쟁은 이어질 전망이다. 유한익 티몬 이사회 의장은 “좋은 물건을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는 발견형 쇼핑이란 카테고리는 유통업의 핵심”이라며 “쇼핑의 재미를 준다는 측면에서 유통사들의 특가 경쟁은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