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청전 이상범 '설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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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청전 이상범(1897~1972)은 한국의 보편적인 산수(山水)에 선인들의 이념, 즉 ‘요산요수(樂山樂水)’의 정신을 접목해 조선 회화와 근대 한국화의 가교 역할을 했다. 조선 말기 화가 심전 안중식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운 그는 초창기에는 조선시대 사의적(寫意的) 화풍을 충실히 따랐다.
하지만 1950년대 들어 새로운 진경산수 화풍을 모색하며 소위 ‘청전 양식’이라는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농담을 달리한 짧은 붓질을 수없이 반복하고, 점을 찍는 듯한 ‘미점법(米點法)’을 활용한 작품들은 단번에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그린 ‘설악산’은 ‘청전 양식’의 탄생을 예고한 작품이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설악산의 평화로운 풍경을 해방 이전에 즐겨 사용하던 뾰족한 침엽수 대신 맑고 연한 담묵으로 은은하면서도 부드럽게 재현했다. 붓질을 중첩해 바위의 묵직한 단면을 부각했고, 먹의 농도를 줄이면서 화선지 본래의 색이 드러나도록 환하게 처리했다. 뾰족하고 험악한 바위를 마치 도끼로 찍은 듯한 부벽준법으로 그려 산의 기운을 마음껏 펼쳐 보인다.
설악산의 깊고 웅장한 모습을 그려 우리 산하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녹여냈고, 제작연도를 왼쪽 하단에 단기로 적어 광복의 감격도 담아냈다. 설악산의 풍경을 파격적인 수직 구도로 그려낸 청전의 손맛을 듬뿍 전해준다. 이 그림은 198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10주기 기념전에 출품돼 화제를 모았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