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 선수교체 후 '패스트트랙' 강행…한국당 "국회법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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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영, 오신환 사임안 제출키로국회가 선거제 개편안 등의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대상 안건) 추진을 놓고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바른미래당이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대한 같은 당 소속 오신환 의원의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위원직을 박탈하려고 하자, 자유한국당은 “국회법에 위배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문희상 의장 수용 여부 촉각
교체 땐 패스트트랙 처리될 듯
사개특위가 25일 회의를 열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의결할 예정인 가운데, 한국당은 “소송 등 모든 투쟁 수단을 동원해 반드시 저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바른정당계 “김관영 불신임 투표 추진”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25일 오 의원의 사개특위 위원 교체를 위한 사임 요청(위원 개선 통지)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김 원내대표는 새 특위 위원에 국민의당계 채이배 의원을 임명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원내대표는 당초 24일 요청안을 낼 계획이었지만, 오 의원과 같은 바른정당(친유승민)계 의원들이 육탄으로 막아 접수하지 못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수용하면 오 의원은 특위 위원직을 잃는다. 오 의원은 전날 열린 바른미래당 의원총회에서 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이 선거제 개편안, 공수처 설치법,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키로 한 합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만약 오 의원 대신 패스트트랙에 찬성하는 의원이 사개특위 위원에 새로 임명되면 세 안건은 패스트트랙 절차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오 의원은 당 지도부 움직임에 거세게 반발했다. 그는 “(사개특위 위원직) 사·보임을 단연코 거부하겠다”며 “김 원내대표는 만행을 저지른 것을 사죄하고 즉각 사퇴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지상욱 의원은 “김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의총에서 ‘사개특위 위원의 사·보임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며 “어찌 이렇게도 거짓을 반복하는지 가엾다”고 했다.
바른정당계 의원 10명은 이날 긴급 의총 소집을 요구했다. 바른정당계 한 의원은 “당 지도부가 계속해서 이렇게 일방적으로 나간다면 당이 깨질 수밖에 없다”며 “오 의원이 교체되는 순간 김 원내대표에 대한 불신임 투표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바른미래당 당헌에 따르면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의 의총 소집 요구가 있으면 원내대표는 48시간 내 의총을 열어야 한다. 이들은 일단 패스트트랙 지정을 최대한 저지하되 끝내 성사될 경우 유승민 의원을 주축으로 분당하거나 개별적인 탈당도 불사할 태세다.한국당, 법적 공방 예고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지정을 막기 위한 총력전을 이어갔다. 전날 국회 로텐더홀에서 철야 농성을 벌인 한국당 의원들은 이날 오전 국회의장실을 항의 방문해 문의장에게 오 의원의 사개특위 위원직 사임 요청을 수용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사개특위 위원) 교체를 허가하면 결국 패스트트랙의 길로 가게 된다”며 “이는 의장이 대한민국의 헌법을 무너뜨리는 장본인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현아 한국당 원내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바른미래당의 특위 위원 교체는 국회법 절차를 무시하는 반(反)헌법적 행태”라고 했다. 이에 대해 문 의장은 “겁박해서 될 일이 아니다. 최후의 결정은 내가 할 것”이라며 “국회 관행을 검토해 결정하겠다”고 했다. 문 의장은 25일 사개특위 회의가 열리기 전 사·보임 승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법조계에도 김 원내대표의 사개특위 위원직 교체가 국회법 위반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법 48조에 따르면 임시국회 회기 중에는 특위 위원을 교체할 수 없다. 지난 8일부터 임시국회가 진행 중이어서 오 의원에 대한 사임 조치는 법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국회법은 ‘(위원의) 질병 등 부득이한 사유로 의장 허가를 받은 경우나 위원 본인의 (사임) 의사가 있을 경우’ 교체가 가능하도록 했다. 오 의원은 질병을 앓고 있거나 해외 출장 등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본인 의사에 반해 위원직을 박탈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 의장이 오 의원에 대한 사임 요청을 승인할 경우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절차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거나 패스트트랙 지정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하헌형/안대규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