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스타트업이 부럽다"…TSMC가 만든 비메모리 생태계

불붙은 400조 비메모리 시장 쟁탈전

정부 지원으로 파운드리 세계1위
다양한 팹리스 성장 '선순환' 견인
“대만 대학원생들이 부럽습니다.”

국내에서 반도체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창업자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대만의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가 국내와 달리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대만 교수들은 논문을 쓸 때도 14나노미터(㎚, 1㎚=10억 분의 1m) 등 최첨단 공정으로 시제품을 만든다”며 “바로 시장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14나노는 회로 선폭을 의미한다. 숫자가 작을수록 더 만들기 어렵다.

한국은 딴판이다. 지난해 스마트폰용 인공지능(AI) 반도체를 개발한 박준영 유엑스팩토리 대표가 만든 시제품은 65나노 기술을 기반으로 했다. 정부와 삼성전자 파운드리에서 대학에 제공하는 서비스가 딱 그 정도 수준이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65나노 기반의 시제품으로는 시장에 나갈 수 없어 중국 업체로부터 20억원을 투자받아 28나노 제품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떠받치는 건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 TSMC다. 1987년 대만 정부의 출자를 받아 모리스 창 회장이 설립한 TSMC는 앞선 기술력과 정부 투자를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1992년 민영화된 이후에도 정부의 전폭적 지원은 이어졌다. 애플 화웨이 퀄컴 엔비디아 등 글로벌 팹리스를 고객사로 받아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 1위(50.78%)를 기록하고 있다.탄탄한 파운드리업체가 생기자 다양한 분야의 팹리스들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1980~1990년대 한국 반도체 업계가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 집중할 때 대만은 PC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 반도체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인텔로부터 중앙처리장치(CPU)를 받고, 나머지 반도체는 직접 설계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 PC 마더보드 대부분이 대만에서 제작됐다. 팹리스가 성장하면서 파운드리업체도 다양한 제품을 제조할 수 있게 됐다.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가 들어섰다.

산·학·연 생태계도 탄탄하다. 정부는 반도체구현센터(CIC)를 통해 학생과 스타트업에 설계 툴을 제공한다. 웨이퍼 하나에서 여러 종류의 반도체를 생산해 테스트해볼 수 있도록 하는 MPW(멀티 프로젝트 웨이퍼) 서비스도 제공한다.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시스템IC, DB하이텍 등이 파운드리 서비스를 하고 있다. 아날로그 반도체를 수탁 생산하는 DB하이텍은 2000년 파운드리 사업에 뛰어들어 팹리스 생태계를 성장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동안 정부로부터 받은 혜택은 없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