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일본경제 워치] 일본 취업 정보 얻기 위해 도쿄 한복판에 모인 한국 청년들

“한국인이 일본에서 취직을 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인생을 전부 ‘리셋’하는 것과 같습니다. 일본의 기업문화가 다른 나라와 차이가 나는 점이 많은 만큼 일본 기업의 특징과 원하는 인재상을 잘 파악한 후 입사를 모색해야 합니다”(구보타 마나부 일본 유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지난 24일 오후 도쿄 시나가와의 한 행사장에서 열린 주일한국대사관 주최 ‘일취월장(日就越障)-일본 취업 설명회’에는 일본 취업을 준비 중인 한국인 유학생과 어학연수생, 워킹홀리데이 참가자들이 150명 가까이 몰렸습니다. 행사에서 제공되는 일본 취업 관련 정보와 ‘취업 팁’을 얻기 위해 모두 귀를 쫑긋 세운 모습이었습니다. ‘일취월장(日就越障)’이라는 행사명은 일본(日) 취업(就) 장벽(障)을 초월(越)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김지희 주일대사관 경제공사참사관은 “일본 취업을 원하는 한국 구직자들이 빠르고 폭넓게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습니다.이날 행사는 △일본의 취업환경 △일본 취업의 특징 △한국정부의 해외취업 지원 사업 △라쿠텐, 후지타관광 등 한국인 채용을 고려하는 일본 기업 소개 등으로 이뤄졌습니다. 올해에만 3회에 걸쳐 205개사가 참여하는 유학생 취직 면접회에 대한 소개도 이뤄졌습니다.
특히 막연하게 일본이 구인난이 심각한 만큼 현지 취업이 쉬울 것이라고만 여기는 구직자들에게 일본 취업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솔직한 실상에 대한 정보들이 오간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쓰다 다케히코 도쿄외국인고용서비스센터 실장은 “일본은 올 2월 유효구인배율(구직자 1인당 일자리수)이 2.13배에 이를 뿐 아니라 개인소비가 증가하고 기업 수익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등 객관적인 고용 여건은 이례적으로 좋은 편”이라면서도 “하지만 일본 총인구 대비 외국인 비율은 5년 전에 비해 두 배나 늘었다지만 여전히 2.02%에 불과하고 지난해 일본 유학 졸업자 중 31.1%만 일본에 취업했을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일본에 유학하고 있는 학생의 64.6%가 일본에서 취직을 희망하고 있지만 실제 취업은 크게 못 미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이처럼 일손이 부족하다는 일본에서 외국인의 취업이 부진한 데에는 독특한 일본의 기업문화가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일본 기업 중 외국인을 고용하고 있는 기업은 전체의 45.1%이고, 고용할 계획이 있는 기업도 17.8%에 이르지만 주로 대기업들로 외국인 채용이 집중돼 있다는 지적입니다. 일본 중소기업만 따로 보면 외국인을 채용하는 기업 비율은 35.5%로 떨어진다는 설명입니다. 일본 기업 수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대부분이 여전히 일본인 ‘순혈주의’를 고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대기업의 74.5%가 외국인을 이미 채용하고 있는 것과 대비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일본 기업의 외국인 채용규모도 아직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을 고용하고 있더라도 전체 직원의 1%미만만 채용하는 기업이 전체의 40.9%에 달했습니다. 1~5%만 채용하는 기업도 33.2%나 됐습니다. 직원의 20%이상을 외국인으로 채용한 기업은 6.3%에 불과했습니다.

외국인을 주로 고용하는 분야도 한국인 구직자들이 찾는 직종과는 거리가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본에서 외국인 일자리 수요가 빨리 늘어나는 분야는 외국인 관광객 대상사업이나 서비스업, 중소기업 해외활동 분야 등이라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저임금에 노동 강도가 강한 만큼 최근 이들 일자리는 베트남, 네팔 등지에서 온 인력들이 주로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5년간 일본 내 베트남과 네팔 인력 규모는 5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한국인 취업자 수도 2014년 1만7262명에서 2018년 6만2516명으로 꽤 늘긴 했지만 3D업종을 지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만큼 절대규모나 증가율 모두 동남아시아에 비하면 크게 뒤쳐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무엇보다 현지 전문가들은 일본 기업 특유의 고용문화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구보타 마나부 일본 유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일본기업은 여전히 대규모 일괄채용으로 인력을 충원하고 있고, 종신고용과 연공서열 문화도 많이 남아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취업 준비생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지식과 기술, 전공을 우선시하기 보다는 직원의 잠재력을 중시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대학 학벌이나 전공, 문·이과 여부 등을 중시하지 않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대신 회사에서 채용을 한 뒤 오랜 시간을 들여 재교육을 해나가며 인재를 육성하는 기업 모델을 유지해 왔다고 합니다. 따라서 “한 3년 정도 일본에서 경험을 쌓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을 먹은 한국인 취업 지망생의 경우 처음부터 기업과 ‘미스매치’가 심하다는 설명입니다.
또 일본 기업들이 외국인을 채용하려는 이유가 당장의 일손부족을 해소하려는 것도 있지만 해외 판로를 확대하고, 외국에 대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으며, 해외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적절히 할 수 있기 위해 외국인 고용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지적입니다. 여기에 일본 대기업들은 사내 다양성 확보를 위해 외국인 인재를 찾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일본인과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을 정도의 일본어 실력이 기본적으로 요구되고, 상당수 직종에선 영어 능력도 수준급으로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구직자 입장에선 “왜 이 회사를 지원했냐”는 회사의 질문에 명확히 대답할 수 있고, 회사가 요구하는 바를 충족할 잠재력이 있다는 점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도 지적됐습니다.대부분의 설명이 일본어로 3시간 넘게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취업을 원하는 한국 청년들의 정보 수집 열기가 매우 뜨거웠습니다. 글로벌 시대에 외국에서 젊은 인재들이 능력을 발휘하려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바람직한 일일 것입니다. 다만 이처럼 뜨거운 한국 청년들의 일본 취업 열기가 한국의 얼어붙은 취업 환경 때문에 ‘강제된’것 같은 느낌도 들어 마음 한편이 무겁기도 했습니다. 국내 취업도 활발하게 개선되고, 해외에서 능력을 발휘하려는 진취적인 젊은이도 모두 늘어나는 양방향 고용 개선이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