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책 속으로] "노래 인생 40년 되돌아봐…내가 지닌 의미, 세상과 나누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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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가는 시내버스가수 정태춘“에세이를 쓰는 게 시와 노랫말을 쓰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어요. 살아온 것들을 얘기하다 보니 자칫 무게감 있는 회고록 같아 보이기도 했죠. 너무 진지하게 읽히지 않도록 편하고 가볍게 쓰려고 애썼습니다.”
싱어송라이터 정태춘 씨(65·사진)는 25일 자신의 노래인생 40년을 되돌아본 에세이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를 이같이 설명했다. 이 책은 ‘정태춘 박은옥 4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정씨 노래의 가사, 미발표작으로 남아 빛을 보지 못한 노랫말과 함께 노래와 세상에 대한 그의 진심어린 생각을 담은 에세이다. 그는 1978년 자작 앨범 ‘시인의 마을’로 데뷔해 1979년 ‘MBC 가요대상 신인상’ 및 ‘TBC 방송가요대상 작사부문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세상에 얼굴을 알렸다.정씨는 “40년 세월 노래를 불러오면서 내 이야기를 함부로 꺼내지 않기로 결심했고 최근엔 노래 만들기까지 접었었다”며 “시를 쓰는 것이나 세상을 향해 직접 이야기하는 것 모두 스스로 부끄럽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입을 닫았다”고 했지만 그는 이름을 숨긴 채 개인 블로그를 통해 틈틈이 글을 올리며 세상과 소통하는 끈을 놓지 않았다.
그에게 다시 펜을 집어들게 한 건 ‘정태춘·박은옥 데뷔 4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에서 올해 준비한 프로젝트들 때문이었다. 정씨는 “딱 1년만 밖으로 나와 나를 개방하고 사람들과 재미있게 놀겠다고 마음먹었다”며 “무엇보다 내가 지닌 의미가 있다면 모두 나눠줬으면 하는 바람에 이번 에세이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책에는 한국 사회의 모순과 저항을 담아낸 가사 121곡이 수록돼 있다. 1부 ‘내게 노래는 이렇게 왔다’로 시작해 5부 ‘2012년, 10년 만의 새 앨범’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세계를 조명했다. 정태춘 개인의 연대기적 삶을 담았지만 1970~1980년대 동시대를 함께 살아온 모두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는 “작곡한 노래에 대한 에피소드는 물론 20~30년 전 당시 상황과 함께 변해가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많은 사람이 정태춘을 저항가수, 투쟁가수로 기억하지만 사실 ‘서정가수’였음을 책은 분명하게 보여준다. 책을 통해 그의 아름다운 노랫말과 생활에 천착한 에피소드를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그 기저에 사람들 사이에 남아 있는 깊은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오랜 동료이자 부인인 가수 박은옥 씨는 “정태춘 개인의 일기가 사회의 일기로 바뀌고 후반엔 그 둘이 함께 노랫말 속에 드러났지만 그는 원래 서정성을 노래에 담았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내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글을 썼다”며 “내가 변화되는 과정은 물론 한국 사회 일상이 변화하고 축적돼온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라고 했다. (천년의시작, 348쪽, 1만8000원)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