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로테는 숙녀 아닌 요부…'격정의 드라마'로 재해석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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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연극연출가 김광보, '베르테르'로 첫 오페라 도전“이전에 소설을 읽거나 뮤지컬을 연출할 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어요. 샤를로테의 내면 심리나 베르테르의 자살동기가 잘 납득되지 않았거든요. 이번 오페라에선 마스네의 격정적인 음악을 들으며 뭔가 확신이 생겼습니다.”
서울시오페라단의 야심작
다음달 1일 세종문화회관 개막
‘스타 연극 연출가’로 잘 알려진 김광보 서울시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사진)이 오페라에 처음으로 도전한다. 서울시오페라단은 다음달 1일부터 4일까지 쥘 마스네의 ‘베르테르’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 김 감독의 100번째 연출작이기도 하다.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원작 해석에 제 주관이 많이 들어가 결론이 조금 달라질 수 있다”며 “관객들의 항의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베르테르의 자살과 샤를로테의 심리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892년 초연된 ‘베르테르’는 ‘마농’ ‘타이스’와 함께 프랑스 작곡가 마스네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원작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다른 남자의 약혼녀 샤를로테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고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년 베르테르의 이야기가 오페라의 옷을 입는다.
김 감독은 연극이 전공이지만 2000년 창작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초연을 비롯해 ‘신과 함께’ 등 뮤지컬을 여러 편 연출했다.오페라 연출은 처음이다. 음악이 복잡하고 원어로 공연되는 오페라가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처음엔 헤맸지만 음악을 계속 반복해서 듣고 나서 연출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어요. 마스네의 음악은 깜짝 놀랄 만큼 격정적이었어요. 음악 자체가 가진 드라마성이 워낙 뛰어나 극적인 해석의 여지가 많았습니다.”
김 감독이 이번 작품을 통해 샤를로테를 ‘재발견’한 것도 음악 덕분이었다. 그는 샤를로테를 일반적 시각인 순종적이고 사랑스런 여인이 아니라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자를 유혹하고 악녀의 기질을 지닌 팜파탈로 해석했다. 마스네의 음악이 그런 해석의 길을 열어줬다. 그는 “특히 3막이 시작될 때 샤를로테를 맡은 메조소프라노의 음울한 중저음 목소리가 더욱 팜파탈적 느낌을 준다”며 “베르테르가 결국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몰고 가는 샤를로테의 심리 묘사에 연출의 무게중심을 뒀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이번 공연의 연습을 시작하기 전인 지난 1월에 오페라에 나오는 배우들의 노래를 모두 외웠다고 했다. 그는 “이젠 음악을 들으면 대략 어느 부분이고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다”며 “하지만 원어로 하다 보니 배우들이 어떤 장면에서 어떤 섬세한 감정을 내야하는지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이번 공연에서 베르테르 역에는 테너 신상근과 김동원, 샤를로테 역에는 메조소프라노 김정미와 양계화, 알베르트 역에는 바리톤 공병우와 이승왕, 샤를로테의 동생인 조피 역에는 소프라노 김샤론과 장혜지가 번갈아 출연한다. 양진모가 지휘하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그는 “오페라 가수들과는 처음 작업을 하는데 연극 배우 못지않은 연기 열정에 놀랄 때가 많다”며 “그 어느 때보다 배우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고 했다.
김 감독 연출의 특징인 속도감 있는 극 전개와 절제된 무대미학이 오페라 공연에선 어떻게 구현될까. 김 감독은 “이번 공연도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고 소개했다. “오페라 ‘베르테르’의 다양한 연출 버전을 모니터링해 봤어요. 연출에 따라 공연시간이 최대 30분 이상 차이나더군요. 마스네의 빠르고 격정적인 음악에 연기를 맞추기 위해선 극 자체가 빠르게 이어져야 합니다. 지휘자와 상의해 공연시간을 2시간10~15분 내로 끝낼 수 있도록 맞췄습니다.”
이번 공연에선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라는 넓은 무대에 오페라 가수 몇 명만 등장하는 장면이 많다. 김 감독은 이런 장면에서 남은 공간을 어떻게 채울지가 가장 큰 난제였다고 했다. “고민 끝에 작품 속 인물들의 ‘관음증’을 시각화하기 위해 아크릴 구조물을 무대에 세우기로 했습니다. ‘샤를로테의 약혼자인 알베르트는 베르테르와 샤를로테의 만남을 몰래 지켜보고 있지 않았을까’, ‘베르테르 역시 샤를로테를 몰래 지켜보다가 반한 것 아니었을까’ 하는 관음적 상상을 무대에 투영시킨 것이죠.”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