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육탄 봉쇄·의원 감금·경호권 발동…'난장판' 된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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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영, 오신환·권은희 교체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이 25일 선거제 개정안,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법,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하려던 계획이 무산됐다. 이들 4당은 이날 밤늦게까지 해당 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한 표결을 시도했으나,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계가 국회 곳곳에서 육탄 저지에 나서면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국회 의사과에 팩스로 접수
문희상 국회의장, 병원서 승인
군사작전 방불케 한 특위 위원 교체여야 5당은 이날 아침부터 온종일 막장 드라마 같은 힘겨루기를 펼쳤다. 민주당의 한 4선 의원은 “2012년 국회선진화법 시행 후 국회가 이렇게 난장판이 된 건 처음”이라고 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오전 9시30분께 국회 의사과에 팩스를 보내 같은 당 오신환 의원의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위원 사·보임(교체) 요청안을 접수했다. 오 의원과 같은 바른정당계 유승민, 유의동, 이혜훈, 지상욱 의원 등이 8시30분께부터 의사과 앞을 몸으로 막아서자 인편 대신 팩스로 요청안을 제출한 것이다.
전날 한국당 의원들과의 몸싸움 끝에 국회 인근 여의도성모병원에 입원한 문희상 국회의장은 오전 11시께 권영진 국회 의사국장이 들고 온 교체 요청서에 서명했다. 요청안이 의사과에 접수된 직후 유승민 의원 등이 병원을 찾아 면회를 요청했지만, 문 의장은 거부했다. 유 의원은 “의장 몸 상태가 안 좋으시다고 들었는데 우리보다 늦게 도착한 의사국장을 몰래 불러 결재했다”고 했다.
바른정당계 의원들은 이날 오전 오 의원 사임에 반대하는 연판장을 돌려 당내 의원 13명의 서명을 받았다. 여기에는 지난 23일 바른미래당 의원총회 때 패스트트랙 지정에 찬성한 김삼화, 신용현 의원도 이름을 올렸다. 오 의원은 “의총 때 특위 위원 교체는 하지 않겠다는 김 원내대표의 약속이 있었고, 그 조건하에 패스트트랙 가부 투표를 한 것”이라고 했다. 바른미래당은 오후에 또 다른 사개특위 위원인 권은희 의원도 임재훈 의원으로 전격 교체했다. 오신환, 권은희 의원은 선거법 개정안 등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반대해 왔다. 권 의원은 교체 후 “다들 이성을 상실한 것 같다”고 했다.자정까지 회의도 못 연 특위
한국당은 이날 오전부터 패스트트랙 지정 표결을 위해 사개특위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회의가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국회 회의장 세 곳을 점거하며 총력 저지에 나섰다. 한국당 의원들은 여야 4당이 기습적으로 특위 회의를 열 가능성에 대비해 회의실 앞에서 스크럼을 짜는 등 몸싸움까지 불사했다. 김현아 의원 등은 여당 측이 공수처 설치법을 팩스로 접수할 것을 대비해 법안 접수처인 국회 의안과에서 대기했다. 사개특위 위원들은 오후 6시가 넘어서야 가까스로 공수처 설치법을 접수했다.
여상규 의원 등 11명은 오전 9시께부터 오 의원 대신 사개특위 위원으로 임명된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실에 집결했다. 채 의원의 사개특위 전체 회의 출석을 막기 위해서다. 채 의원은 공수처 설치법 패스트트랙 지정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채 의원은 지속적으로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김정재, 송언석, 엄용수 의원 등이 문 앞을 소파로 막으며 저지했다. 채 의원은 의원실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민 채 기자들을 향해 “수시간째 감금 상태”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채 의원 신고로 경찰도 출동했다. 그는 여섯 시간 만인 오후 3시15분께 의원실을 겨우 빠져나와 공수처 설치법 심의가 진행 중인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장으로 향했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한국당이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며 “추태를 그만두고 당장 국민과 문 의장에게 사죄하라”고 했다.
문 의장은 오후 7시께 경호권까지 발동했으나, 한국당의 인간 띠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 국회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한 것은 1986년 이후 33년 만이다.
사개특위와 정개특위는 오후 9시 넘어 각각 전체 회의를 열어 선거제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법 등의 패스트트랙 지정 표결을 벌이려 했으나, 한국당 의원들에게 막혀 회의장 진입조차 하지 못한 채 법안 처리에 실패했다.
하헌형/김소현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