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종량세로 전환한 일본의 주세법

Cover Story
술 좀 마셔본 기자의 주세법 레슨

자국 맥주보호 위해 증류주와 세율 똑같이
시골 양조장서도 '프리미엄 사케' 만들어
전문가들은 선진국 대부분이 종량세를 택하고 있고, 이 가운데 일본의 사례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본은 1989년 종량세로 전환했다. 지역 술이 많고 다양한 주종이 있는 일본은 종량세 전환도 세심하게 했다. 큰 틀은 자국 주류산업을 보호하면서 주종의 다양성을 지키는 방향이었다. 소비자 선택권을 넓혀주겠다는 취지였다.미국과 유럽은 ‘고도주는 고세율, 저도주는 저세율’ 법칙을 철저히 따른다. 일본은 달랐다. 각 주종을 나누고, 알코올 도수 구간을 만들어 L당 일정 금액을 부과하는 종량세 체계를 갖고 있다. 세분화한 결과다. 세금을 제대로 걷으면서 전통주산업을 지킬 방법을 찾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일본은 종량세지만 맥주와 증류주 세율이 같다. 자국 맥주산업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일본 맥주시장은 10조원을 넘는다. 시장이 크고 세수에 큰 기여를 하기 때문에 종량세이면서 증류주와 같은 세율을 적용해 세수를 확보했다. 동시에 사케와 같은 일본 전통주는 알코올보다 도수는 높지만 세율을 낮췄다. 세금이 낮으면 일반적으로 산업이 활성화된다. 고도주도 마찬가지다. 외국 위스키 브랜드는 37도 이상 고도주로 분류해 고구마 소주 등으로 제조한 일본 프리미엄 소주에 비해 세금을 두 배 이상 더 내게 했다.

일본 종량세 개편의 효과는 10~20년 뒤에 나타났다. 동네 양조장에 불과하던 지역 중소 사케 양조장들이 프리미엄 사케를 만들기 시작했다. 일본 전체 사케시장이 2009년 64만kL에서 2015년 55만kL로 줄었지만, 프리미엄 사케시장은 같은 기간 14만kL에서 지난해 18만kL까지 늘었다. 수출도 크게 증가했다. 2000년대 초반 2%에 불과하던 일본 수제맥주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10%대에 진입했다. 정철 서울벤처대 교수는 “종량세를 택한 많은 나라가 전통주를 보호하는 방안을 함께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와인산업을, 일본은 전통주산업을 보호하는 세금체계를 마련했다는 얘기다. 일본은 최근 맥주의 맥아 비율을 67%에서 50%로 낮추고, 사케와 와인의 주세를 350mL당 35원으로 일원화하는 등 업계의 목소리를 반영한 주세 개편을 추가로 추진 중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