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의 데스크 시각] 정신질환자 방치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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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 지식사회부장정신질환자의 강제 입원을 엄격히 제한하는 ‘정신건강 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정신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된 건 2년 전인 2017년 5월이다. 이전에는 가족 2명이 동의하고 의사 1명이 필요하다고 진단하면 본인이 거부해도 입원시킬 수 있었다. 개정안에선 서로 병원 소속이 다른 의사 2명의 진단을 받아야 입원시킬 수 있다. ‘환자가 자신 및 타인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경우’라는 단서조항도 생겼다.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당시 의료계에선 “강제 입원은 막겠지만 10만 정신질환자 치료에 구멍이 생길지 모른다”는 우려가 터져나왔다. 일부 의료계 단체도 반대 성명을 냈다. 지금 전문가들은 이 법의 시행으로 연간 2500명 정도의 정신질환자가 병원에 입원하지 않게 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치료 중단해도 대책이 없다
최근 정신보건법이 자주 거론되는 것은 조현병(정신분열증) 등 정신질환자의 강력 범죄가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어서다. 지난해 말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교수가 피살된 뒤 조현병 환자에 대한 관심이 커졌는데, 최근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사건과 창원 10대 청소년의 살인사건 등이 잇달아 발생해 공포감을 줬다. 실제 통계를 봐도 정신질환자의 흉악 범죄는 증가하는 추세다.
정신질환자의 범죄는 뚜렷한 이유 없이 돌발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큰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정신질환은 충분히 완치 가능한 질병이다. 공격성향을 드러내는 조현병도 완치율이 94%나 된다. 또 치료 중인 조현병 환자가 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극히 낮다고 한다.문제는 진주와 창원에서 발생한 사건의 범인들처럼 치료를 중단하거나 거부한 환자다. 이들에 대한 관리체계엔 이미 구멍이 뚫려 있다.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전문가(이명수 대한조현병학회 홍보이사)는 “조현병 치료를 중단한 진주 아파트 사건 피의자 안인득이나, 병원 입원을 거부한 창원의 살인범 같은 환자가 치료받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지금으로선 잘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그만큼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계속 커지는 국가 책임론
그런데 이런 우려는 2년 전 ‘강제 입원’ 요건을 완화할 때부터 나왔다. 개정안의 요지는 정신질환자를 병원이 아닌 사회에서 치료하도록 하자는 것인데, 한국 사회엔 그런 인프라와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게 문제다. 퇴원한 정신질환자에 관한 정보는 사장돼 있고 사회에서 그들의 치료를 맡아야 할 기구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의료계에서는 정신질환자 치료의 국가 책임을 요구해왔지만 논의만 무성할 뿐이다. 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대책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주로 교도소가 아니라 치료감호시설에 수용된다. 국내에 유일하게 있는 공주치료감호소다. 이곳엔 현재 1000여 명의 정신질환자가 수용돼 있지만 근무하는 정신과 전문의는 8명뿐이라고 한다. 당연히 치료는 엄두도 못 낸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범죄로 집행유예 등을 받은 정신질환자의 보호관찰도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신질환자의 재범률이 일반 범죄자에 비해 20%포인트나 높은 65%에 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진주 아파트 사건의 범인 안인득은 교도소에 수감되면서도 끝까지 횡설수설했다. 피해자들은 사과 한마디 없이 자신도 억울하다는 그의 말에 가슴이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횡설수설하는 범인보다 환자를 병원에서 꺼내놓고도 2년간 손을 놨던 우리 사회에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