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성장률 쇼크' 해외 탓이라는데…"親노동 정책이 기업 설비투자 급감 불러"

임금·세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대기업·中企 전업종 설비투자↓
외국인 직접투자도 감소 본격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세 번째)이 지난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긴급 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지난 1분기 한국 경제를 ‘마이너스 성장’(-0.3%)으로 끌어내린 주범은 설비투자 감소였다. 전 분기보다 10.8%나 줄어들면서 경제성장률을 0.9%포인트나 갉아먹었다. 설비투자만 전 분기 수준을 유지했더라면 올 1분기에 0.6% 플러스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 주 52시간 근로제 전격 시행, 높아진 법인세율 등으로 한국에 공장을 세울 이유를 찾지 못한 기업들이 ‘탈(脫)한국’에 나선 여파다. 정부는 “세계 경제 둔화폭과 속도가 예상보다 크고 빨랐다”며 마이너스 성장의 이유를 외부로 돌렸지만, 정작 원인은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

전 업종에서 설비투자 절벽

28일 산업은행에 따르면 올해 기업의 국내 설비투자 규모는 지난해보다 11조5000억원 줄어든 170조원에 그칠 것으로 추정됐다. 관련 통계 기준이 바뀐 2016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반도체(-3.1%) 자동차(-11.5%) 식료품(-27.2%) 석유정제(-32.8%) 기계장비(-20.0%) 등 모든 제조업종의 투자 규모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기업 규모별로는 대기업(-0.9%)보다 중견기업(-31.3%)과 중소기업(-24.6%)의 감소폭이 훨씬 더 컸다.재계 관계자는 “중국 동남아시아 동유럽은 물론 미국 등 선진국도 법인세 감면과 토지 무상 제공, 상대적으로 낮은 인건비로 유혹하는데 굳이 한국 생산을 고집할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며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여파로 국내 생산에 부담을 느낀 중견·중소기업도 ‘코리아 엑소더스’에 합류한 모양새”라고 말했다.

설비투자 감소 움직임은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의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한 작년 2분기부터 본격화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설비투자는 지난해 2분기 7.6%, 3분기 7.7% 감소했다가 4분기에는 0%로 제자리걸음을 했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친기업 정책을 펼쳤더라면 설비투자가 이렇게 줄어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 “하반기 회복된다”지만…한국은행은 올 상반기 설비투자가 5.3% 줄겠지만 하반기에는 6.4%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 반응은 회의적이다. 한은은 지난 1월에도 올해 설비투자 증가율을 2.0%로 전망했다가 불과 석 달 만인 지난 24일 0.4%로 낮췄다. 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한껏 위축된 한국 기업들이 투자를 내년으로 미루면 한은이 기대하는 0.4% 달성도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도 “설비투자가 줄어들면 4~5년간 잠재성장률도 함께 떨어진다”고 우려했다.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는 것도 걱정거리다. 지난 1분기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전년 동기 대비 35.7% 감소한 31억7000만달러였다. 2012년 1분기(23억5000만달러) 후 7년 만의 최저치다. 지난해 3분기(-13.6%)부터 세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정부와 정치권이 합심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규제 완화와 법인세율 인하 없이는 탈한국 현상을 막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은 수요 부문을 늘려 성장한다는 정책인데 공급 부문에서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고 비판했다.

성수영/서민준/구은서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