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잡는게 매?…K골프 제동 건 '한국계' 이민지

LA오픈 14언더파 정상
11개월 만에 LPGA투어 우승

베테랑처럼 코스 요리
4타 차로 김세영 따돌려
“어차피 버디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조급해하지 않았다.”

29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윌셔CC(파71·6450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휴젤-에어프레미아 LA오픈(총상금 150만달러) 최종 라운드. 최근 9개 대회 5승을 합작한 한국 선수들의 질주에 제동을 걸고 나선 건 ‘한국계’ 이민지(23·하나금융그룹)였다.1타 차 단독 선두로 시작한 호주 동포 이민지는 베테랑처럼 코스를 요리했다. 암 투병 중인 캐디 제이슨 길로이드의 어머니를 위해 경기했다는 그는 차근차근 타수를 줄여나갔다. 전반에 2타를 줄인 뒤 11번홀(파4)에서 보기를 범했지만 이후 13번홀(파5)에서 버디로 만회했다. 3타 앞선 18번홀(파3)에선 약 5m 거리의 버디 퍼트를 망설임 없이 하더니 홀 안으로 꽂아 넣으며 우승을 자축했다.

이민지는 “이번 우승은 러레인(길로이드 모친)을 위한 것”이라며 “러레인이 저와 제이슨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올라운드 플레이어’, K골프의 균형추로이 대회에서 나흘 내내 60대 타수를 적어낸 이민지는 최종합계 14언더파 270타를 쳐 준우승을 차지한 김세영을 4타 차로 넉넉히 따돌리고 우승했다. 지난해 5월 볼빅 챔피언십 이후 11개월 만의 우승이자 LPGA투어 통산 5승째다.

1996년생인 이민지는 호주 퍼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체육인 출신 부모로부터 골프 DNA는 물론 한국인 특유의 끈기와 집념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아버지 이수남 씨는 경희대 체육대학을 나와 호주 포트 케네디 골프장 클럽 챔피언을 지냈고 어머니 이성민 씨도 골프 티칭 프로 자격증이 있다.

2012년 US주니어아마추어선수권을 제패하는 등 아마추어 시절부터 ‘프로 잡는 아마추어’로 통하며 천재성을 발휘했다. 2015년 데뷔한 그는 5년 차인 올해 숨겨왔던 잠재력을 본격적으로 꽃피우고 있다. 최근 7개 대회에서 우승 1회, 준우승 2회, 3위 1회 등 ‘톱3’에 네 번이나 입상해 매 대회 우승 후보로 꼽힌다.이번주 우승으로 29일자 여자골프 세계랭킹에서 박성현을 밀어내고 개인 최고 성적인 2위에 오르게 된 이민지는 이제 혼자만의 힘으로 ‘K골프’를 견제할 정도로 성장했다. 70만3472달러를 모아 상금랭킹 2위에 오른 그는 드라이브 비거리 31위(269.86야드), 그린적중률 9위(76.03%), 평균타수 5위(69.69타)로 뚜렷한 약점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5년 LPGA 데뷔 때부터 이민지를 후원해온 하나금융그룹도 모처럼 보람을 맛봤다. 그룹은 호주동포 이민지 외에도 한국계 미국인인 앨리슨 리, 장애인 프로 이승민 등 국적과 상관없이 잠재력이 강한 골퍼 8명을 발굴해 집중 후원하고 있다.

‘역전의 명수’ 김세영 준우승 살아난 화력

한국 국적 선수들은 승수 추가를 다음 대회로 미뤄야 했다. 하지만 이민지의 우승으로 ‘한국 여자 골프 DNA’의 위대함은 다시 한번 입증됐다. 올해 한국(계) 선수들은 10개 대회에서 6승을 거두게 됐다.‘역전의 명수’ 김세영이 최종 라운드에서 3연속 버디를 몰아치는 등 버디 6개와 보기 1개로 5타를 줄여 끈질기게 따라붙었으나 경기를 뒤집진 못했다. 그는 최종합계 10언더파를 적어내 지난달 파운더스컵 공동 10위 이후 올 시즌 두 번째 ‘톱10’을 받아들고 다음 대회를 기약했다.

세계랭킹 1위 고진영은 7번홀(파3)까지 보기 3개(버디 1개)를 쏟아냈으나 남은 홀에서 4타를 줄이는 뒷심을 발휘했다. 이날 2타를 줄인 그는 최종합계 8언더파를 기록해 공동 5위에 올랐다. ‘골프 여제’ 박인비도 고진영과 같은 8언더파로 공동 5위에서 대회를 마치며 올 시즌 두 번째 톱10 성적으로 대회를 마쳤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