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 이대리] 업종별 직업병에 우는 직장인

PC업무 많은 사무직
'거북목 증후군' 달고 살아

회식 잦은 홍보맨
고지혈증·지방간 '종합병원'
웹사이트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김 대리(38)는 병원에서 ‘거북목 증후군(보통 C자형으로 휘어져야 할 목뼈가 거북이처럼 앞으로 길게 빠져나온 형태)’ 진단을 받고 얼마 전부터 필라테스 운동을 시작했다. 하루종일 모니터 화면을 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자연스레 고개가 앞으로 자꾸 쏠려서다. 김씨는 “필라테스반에 여자들이 많아 쑥스럽지만 나름 극약처방으로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며 “목이 아파서 잠도 못 잘 때가 종종 있는데 상태가 더 나빠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업무를 반복하는 직장인에겐 직업병 한두 개씩은 꼭 있다. 사무직엔 대표적인 게 목 또는 허리 디스크다. 오랜 시간 서 있어야 하는 영업직은 하지정맥류로 고생한다. 서비스 업종 종사자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도 한다. 벗어날 수 없는 직업병의 굴레와 이를 극복하려는 김과장 이대리들의 노력에 대해 들어봤다.만인의 질병 ‘목·허리 디스크’

사무직들은 디스크와 안구건조증 등의 직업병에 시달린다. 소형 디자인 사무소에 다니는 하 과장(33)은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는 탓에 목과 허리 디스크로 시달리고 있다. 처음 목 디스크 진단을 받았을 때는 가벼운 운동으로 좋아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매일 8시간 이상 컴퓨터 작업을 하다 보니 3개월 만에 수술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다. 최근엔 허리 디스크 증상까지 생겼다. 회사 선배들에게 어려움을 토로하자 하나같이 ‘나도 디스크다’ ‘재작년에 수술했다’ 등의 얘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업무 특성상 어쩔 수 없더라고요. 이직 말고는 방법이 없어 답답합니다.”

한 국내 건설회사에 다니는 윤 대리(31)는 얼마 전 병원에서 허리 디스크라는 진단을 받았다. 처음엔 근육통인 줄 알았다. 척추전문한의원, 대학병원, 정형외과 등 병원 5~6곳을 돌아본 뒤에야 허리 디스크라는 걸 알게 됐다. 담당 의사는 “하루 종일 앉아서 업무를 하고 잦은 회식으로 몸무게가 10㎏가량 늘면서 척추에 무리가 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매주 두 번 한의원을 가고 있다. 매번 15만원씩 치료비를 낸다. 윤 대리는 “디스크 통증이 심해 의자에 30분도 앉아 있기 힘들다”며 “매달 수십만원씩 나가는 치료비 부담도 만만찮다”고 토로했다.윤 대리의 사무실엔 안구건조증을 겪는 직원이 많아 일본에서 특별히 공수해온 안약을 구비해 두고 있다.

“풍성했던 내 머리가…”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다니는 이 선임(35)은 얼마 전부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숱이 많았던 머리가 듬성듬성해졌다. 면역력 저하에다 스트레스로 대상포진까지 걸렸다. 주 52시간을 지키려다 보니 시간당 업무량이 예전보다 두세 배는 많아졌다. 이 선임은 “오래 쉬어야 낫는다는데 직장인이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며 “이 정도면 탈모도 산재(산업재해)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대형 증권사에 다니는 애널리스트 김씨(39)도 요새 스트레스로 시달리고 있다. 얼마 전 그는 업황을 반영해 한 종목의 주가 전망을 하향 조정하는 보고서를 냈다. 전망대로 그 종목 주가는 뚝 떨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서 터졌다.

소액주주들은 김 애널리스트에게 “왜 주가에 부정적인 보고서를 냈느냐”며 항의 전화를 잇달아 걸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가족에게 해코지하겠다는 협박성 글도 달렸다. “스트레스 때문에 식욕이 없고 잠도 설칩니다. 가족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모든 SNS를 비공개로 돌려놨어요.”

정보기술(IT) 대기업 홍보맨인 채 과장(37)은 다양한 내장질환을 안고 있다. 과체중에 따른 대사 증후군, 고지혈증, 역류성 식도염, 알코올성 지방간 등이다. 주변에선 그를 종합병원이라고 부른다. 지난 10년간 고기 등 자극적인 음식을 주 3~4회 먹은 탓이 크다. 채 과장은 “이런 식으로는 진급도 하기 전에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 요새는 간에 좋다는 약과 위염약 등을 달고 산다”고 토로했다.외국 항공사에서 스튜어디스로 일하는 안씨(30)는 하지정맥류를 앓고 있다. 하지정맥류는 다리에 핏줄이 파랗게 비치고 심하면 울퉁불퉁하게 솟아오르는 질환이다. 정맥 판막이 손상돼 다리의 피가 핏줄에 고일 때 발생한다. 그는 “동료 중에도 하지정맥류를 앓고 있는 사람이 많다”며 “간호사나 미용사처럼 오래 서 있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직업병”이라고 한숨 지었다.

김 과장 가방엔 약과 비타민 등 구비

직업병을 얻어도 이직이 쉽지 않기 때문에 믿을 건 약밖에 없다. 스마트폰 제조업체 연구원인 최 선임(39)은 하루에 10종류가 넘는 약과 영양제를 복용하고 있다. 10여 년 동안 잦은 야근 탓에 건강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혈압약과 콜레스테롤 약을 시작으로 종합 비타민, 오메가3, 밀크시슬, 엘카르니틴, 마그네슘, 루테인 등을 먹고 있다. 최근엔 투약 리스트에 양배추 추출물로 만든 알약을 추가했다.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집중적으로 일하면서 속쓰림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최 선임은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낄 때마다 주변에서 추천받은 영양제를 하나씩 늘렸더니 어느새 하루에 10개가 넘는 알약을 먹고 있더라”며 “올초 운동하겠다고 계획을 세웠지만 한 달 만에 운동 대신 약을 늘렸다”며 쓴웃음을 지었다.철강회사에 다니는 김 과장(42)도 약과 보조식품으로 먹는 것만 홍삼과 위장약, 전립선약, 염증약 등 8종이나 된다. 그는 “이젠 밀린 업무를 다 하고 12시를 넘겨 잠을 자면 다음 날 피곤해서 생활이 안 된다”며 “하루 7시간 숙면을 유지하려 노력 중”이라고 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