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기념일 맞은 日, 평화헌법 개정 논란으로 양분

개헌 반대 1만1천217명 주요 일간지 의견광고
나루히토(德仁) 새 일왕 즉위 후 처음으로 맞은 헌법기념일을 계기로 일본 사회가 평화헌법 개정 찬성과 반대 목소리로 극심하게 갈라졌다.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각 정파 입장에 따라 개헌과 호헌을 주창했고, 시민사회는 개헌 반대 시위에 나서는 등 대립 양상을 보였다.

특히 이번 헌법기념일은 개헌 발의의 관문이 될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맞은 것이어서 양 진영의 격론이 더한 모습이었다.

◇ 일본 헌법기념일은 '평화헌법' 시행일일본 헌법기념일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가 패전한 일본이 연합군최고사령부(GHQ)가 제시한 초안을 토대로 만든 새 헌법이 시행된 1947년 5월 3일을 기리는 날이다.

1890년 발효된 '일본제국헌법'을 대체한 새 '일본국헌법'은 군 통수권을 쥐고 국가권력의 중추역할을 하면서 주변 국가들에 엄청난 참화를 안긴 침략전쟁을 이끈 일왕(덴노·天皇)을 상징적 존재로 만들고(제1조), 전력의 불 보유와 분쟁해결 수단으로 전쟁을 영구히 포기한다는 내용(제9조)을 핵심으로 담았다.

이 때문에 '1·9조 헌법' 또는 '평화헌법'으로 불린다.그러나 2012년 보수세력의 지지를 업고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자민당 정권은 외세에 의해 강제된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脫却·벗어남)을 주장하며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상징으로만 존재하는 현행 '천황제'에 대해선 일본 국민의 지지도가 높아 헌법 1조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군사대국화'를 추구하는 아베 정권은 헌법 9조가 일본의 국가안보권을 제약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 조항에 변경을 가하는 것을 개헌의 골자로 삼고 있다.최근 3년간 아베 총리가 언급한 개헌의 방향은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명시하고 군대를 보유한 '정상국가'로의 변신을 꾀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아베 정권은 1단계로 우선 자위대의 존립 근거를 헌법에 담는 개헌을 바라고 있다.

이 개헌에 성공하면 헌법 제9조의 1, 2항까지 손대는 2단계 개헌을 추진해 합법적으로 무력을 보유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변신을 시도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 엇갈린 입장 속 정치권은 개헌 쪽에 무게

지난 1일 즉위한 나루히토 일왕은 즉위 일성으로 현행 헌법에 따른 '상징 덴노' 역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지만, 부친인 아키히토(明仁) 전 일왕과 달리 헌법을 지켜나가겠다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나루히토 새 일왕의 즉위 후 첫 언급은 국무회의(각의) 결정을 거쳐 확정됐기 때문에 결국 아베 정권의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나루히토 일왕 재위기에 개헌 추진세력의 목소리가 더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요 정당은 이날 개헌 문제를 놓고 엇갈린 입장을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개헌 쪽에 좀 더 무게중심이 쏠리는 모양새다.

집권 자민당은 "초심을 잊지 않고 개헌 논의를 이끌어가는 것이 우리 당의 사명"이라며 "레이와(令和·나루히토 일왕 연호) 시대에도 자랑스러운 국가 만들기를 국민과 함께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민당과 집권 정파를 이루는 공명당은 "새로운 가치관이나 개헌으로밖에 해결할 수 없는 과제에는 필요한 규정을 추가하는 가헌(加憲)으로 임해야 한다"며 개헌 지지 의사를 밝혔다.

보수 정당인' 희망의 당'도 "새 시대에 어울리는 헌법의 틀을 논의하는 것은 국회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했고, 일본유신회는 "현행 헌법을 고집하며 국민투표를 부정하는 것은 국민주권의 부정"이라며 국민의 선택에 맡기자는 주장을 폈다.

반면에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수의 힘으로 이 나라의 형태를 왜곡하는 아베 정권에 정면으로 맞설 것"이라며 '호헌'을 주장했다.

사민당도 "폭주를 계속하는 아베 정권이 평화헌법을 소홀히 하고 개헌으로만 달리고 있다"며 "헌법 개악을 저지하기 위해 올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전력으로 싸우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그러나 현재 중의원이나 참의원 모두 자민당을 주축으로 한 개헌 세력이 개헌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 이상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최대 변수는 7월로 다가온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 지지파 의원 수가 3분의 2 이상 유지될 수 있을지다.

임기 6년에 정원이 242석인 참의원은 3년에 절반씩 교체된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는 작년 선거법 개정으로 정원이 6석 늘어난 248석이 돼 절반인 124명(지역구 74석+비례 50석)을 새로 뽑는다.

이에 따라 향후 3년간 일시적으로 참의원 정원은 기존 121석에 새로 바뀌는 124석이 더해져 245석이 되고, 개헌 세력이 이 가운데 3분의 2인 164석을 확보하면 개헌추진의 길이 열리게 된다.

◇ 유권자 기류는 정치권과 달라…개헌 반대운동도 활발

일본 정치권은 개헌 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우는 듯하지만, 유권자들이 쉽게 이를 용인할 것 같지는 않다.

여론 조사에서 평화헌법 조항을 바꾸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압도적 다수이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이 헌법기념일을 앞두고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헌법 9조를 '바꾸지 않는 편이 좋다'가 64%로, 바꾸는 편이 좋다는 의견(28%)보다 배 이상 많았다.

헌법 9조에 자위대 존재를 명기해야 한다는 아베 총리의 개헌안에 대해서도 반대(48%)가 찬성(42%)보다 높았다.

다만 작년 조사 때의 반대(53%)와 찬성(39%) 비율보다 격차가 줄었다.

마이니치신문 여론 조사에서도 아베 정권 시기의 개헌을 놓고 반대(48%)가 찬성(31%)보다 많았다.

그러나 요미우리신문 조사에선 헌법을 '개정하는 편이 좋다'는 의견이 50%, '개정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의견은 46%로 나타나 다른 매체들과 달랐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의견광고운동'은 헌법기념일을 맞아 1만1천217명이 실명으로 동참한 개헌 반대 광고를 주요 일간지에 내고 개헌저지 운동을 본격화했다.

이들은 의견 광고에서 "우리 헌법은 아시아태평양전쟁의 반성을 기초로 주권자가 정부에 부과한 것"이라며 "그러나 헌법을 존중하고 옹호하는 의무를 진 아베 정권은 스스로 개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헌법 9조에 자위대 존재를 명기하면 집단 자위권 행사에 따른 미군과의 일체화로 세계 곳곳에서 전쟁할 수 있는 군대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무력으로는 평화를 지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이들은 이날 도쿄 임해 광역방재공원에서 평화헌법 수호를 위한 대규모 집회를 여는 등 7월 참의원 선거를 겨냥한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펼쳐나갈 방침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