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통상임금 신의칙 배제하는 '경영상 어려움' 기준이 뭔가

대법원이 통상임금 소송에서 또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경시하는 판결을 내놨다. 한진중공업 근로자들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수당을 더 달라”며 낸 소송에서 ‘수당 청구는 신의칙 위반이 아니다’고 판단한 것이다. 노사가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을 마련할 당시에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기로 합의했더라도, 추후 사정이 변경됐다면 수당·퇴직금을 추가 지급해야 한다는 결정이다.

‘신의칙’이라는 민법상 대원칙을 사문화시킨 판결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대법원은 “청구액이 5억원에 불과해 지급 후에도 회사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신의칙 위반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진중공업은 소송이 제기된 2012년부터는 4년 연속 영업적자를 낸 부실회사다. 자본잠식으로 인해 대주주가 산업은행으로 바뀌었고, 지금도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법원은 외면했다.이번 판결은 지난 2월 시영운수 통상임금 소송과 판박이다. 당시도 1·2심에서 ‘신의칙 위반’ 판결이 나왔지만, 대법원 최종심에서 뒤집혔다. 핵심 쟁점인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 초래 여부’에 대한 재판부 판단 기준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법은 시영운수 사건에서 “지급할 추가수당이 연 매출의 2~4%에 불과하다”며 신의칙 위반을 부정했다. 수익이 아니라 매출을 비교대상으로 잡은 것은 경제상식과 어긋난다.

한진중공업 판결은 이전 사례에 비해 논란의 소지가 더 크다. 신의칙 적용범위를 “수긍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라고 극도로 제한하고 있어서다. ‘노사 간 신뢰’와 ‘법질서 안정’이 법이 보호해야 할 최우선 가치라는 목소리도 높다. 특정 시점에서의 지표인 재무제표만으로 판사가 회사의 경영 위험을 판단할 수 있다는 건 자만이다. 명확한 기준 제시 없는 자의적 재판의 지속은 법원의 신뢰 추락을 자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