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들의 조세불복 부르는 '누더기 세법' 이젠 바로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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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바뀌고 복잡한 세법에 기업 불확실성 커져지난해 조세심판원에 접수된 법인세 불복 심판 청구 건수가 695건으로 1년 전(574건)에 비해 21.0% 증가했다. 2016년(509건) 이후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국세청의 세금 부과 결정에 반발하는 기업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지난해 법인세 심판 청구 인용률(기업 승소)은 31.0%로 전체 평균(20.1%)을 크게 웃돌았다. 10건 중 3건꼴로 오류가 있었다는 의미다.
세수 늘리려면 시장활력 높이고 기업 의욕 살려야
국세청의 과세에 이의를 제기하는 조세 불복이 늘어난 것은 ‘툭하면 바뀌는’ 세법 탓이 크다. 소득세법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양도소득세 관련 규정이 바뀐 탓에 전문가들조차 손사래를 칠 지경이다. 업계에서는 양도세 관련 상담을 거절하는 ‘양포(양도소득세 포기) 세무사’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다. 조세특례제한법은 정치권의 ‘민원 해결 창구’로 전락했다. 이것저것 감면 조항을 끼워넣다 보니 안 그래도 복잡한 세법이 전문가도 이해하기 힘든 ‘누더기 법’이 됐다. 세법 조항이 모호하면 국세청 직원들은 일단 적극적으로 해석해 ‘최대한’ 세금을 매길 수밖에 없다. 복잡한 세법이 무리한 과세를 부르고, 조세 불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올해 국세청의 기업 세무조사가 강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은 우려스럽다.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0.3%(전 분기 대비)를 기록하는 등 경기 부진으로 작년과 같은 ‘세수 호황’은 기대하기 힘들다. 지난해 법인세수 증가를 이끈 반도체 호황은 꺾인 지 오래다. 국세청은 조사 건수 축소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지만, 세수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국세청의 징수행정이 강화되지 않을까 하는 기업들의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기업들은 2013년 경기 침체 여파로 세수가 줄자 국세청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벌였던 ‘악몽’이 재연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획일적인 근로시간 단축(주 52시간 근로제) 강행, 해직자의 노동조합 가입 허용 추진 등 친(親)노조 정책이 쏟아지면서 기업들은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툭하면 공장을 멈춰야 하는 산업안전법, 화학물질관리법 등 ‘규제 쓰나미’도 산업 현장을 뒤흔들고 있다. 정부는 기업 경영권을 옥죄는 상법 및 공정거래법 개정도 밀어붙이고 있다. 기업들은 국내외 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경영환경이 악화된 마당에 노무·환경 관련 리스크에다 세무 리스크까지 떠안아야 할 수도 있다.
정부가 단기 일자리를 억지로 늘리는 ‘퍼주기식’ 재정정책을 이어가면서 부족한 세수를 기업 세금으로 메우겠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특히 국세청의 징수행정 강화는 기업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고 투자와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기업 실적 악화와 세수 감소라는 악순환을 부를 가능성도 있다. 각종 노동 및 산업 규제를 완화해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가 늘고, 경기가 살아나면 세수는 자연히 늘어난다. 세수를 늘리는 지름길은 기업을 쥐어짜는 게 아니라 기업의 투자 의욕을 고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