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 이야기] 디지털 기술 발달하면 현금의 필요성은 그만큼 줄어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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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S11
(53) 4차 산업혁명과 현금 없는 사회‘카드만 받습니다. 죄송하지만 디지털 시대입니다.’ 영국의 펍(pub)인 ‘크라운앤드앵커’ 매장에 적힌 안내문이다. 한국에도 현금 결제 불가를 외치는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전국 매장의 60%가 신용카드를 비롯한 전자결제수단으로만 결제할 수 있는 ‘현금 없는 매장’으로 운영된다. 2018년 10월 서비스를 시작한 ‘타다’ 역시 현금 결제가 불가능하다. 사전에 등록된 신용카드로만 결제할 수 있다. ‘카드 결제 불가’가 문제 된 불과 몇 해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디지털시대 '현금 없는 사회'는
다양한 혜택과 문제가 동시에 발생
부작용 줄이고 혜택 높이는 고민 필요
‘현금 없는 사회’의 등장‘현금 없는 사회’는 세계적인 추세다. 2017년 기준 유럽연합 국가의 ‘캐시리스(cashless)’ 거래(카드, 간편결제 등 현금 외 수단으로 결제) 건수를 살펴보면 영국과 프랑스, 독일이 모두 200억 건을 훌쩍 넘었다. 특히 영국에서는 매달 300여 개의 현금인출기가 사라질 정도로 현금 사용이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다. 360년 전 유럽 최초로 지폐를 도입한 스웨덴에서는 5년 내 현금 사용률이 0%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신흥국 중에서 중국이 캐시리스 거래에 가장 앞서 있다. 2017년 모바일 결제 총액은 1경6500조원으로 5년 새 244배나 폭증했다. 중국에서는 1위안(약 170원)짜리 거래도 현금 대신 모바일 간편결제를 선호할 정도이다. 한국 역시 현금 없는 사회에 한층 더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 16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이 지갑 속에 넣고 다니는 현금은 7만8000원으로 3년 전에 비해 3분의 1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 가구의 지출액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32.1%로 신용·체크카드(52.0%)에 비해 낮아졌다. 현금 비중이 38.8%로 신용·체크카드의 37.4%에 비해 높았던 2015년과는 크게 다른 양상이다.
‘현금 없는 사회’의 명암
현금 없는 사회의 구현이 점차 빨라지는 것은 무엇보다 편리하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신용카드를 넘어 온라인 뱅킹, 모바일 결제가 보편화되면서 분실 및 도난의 위험이 있는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스웨덴은 은행 지점 1600개 가운데 900곳에서 현금 관련 업무를 일체 중단했다. 그 덕분에 2013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불운한 은행 강도 사건이 스웨덴에서 발생했다. SEB은행의 스톡홀름 지점에 은행 강도가 난입해 현금을 요구했지만, 안타깝게도(?) 은행이 현금을 취급하지 않는 탓에 내줄 현금이 없었다. 덕분에 2014년 스웨덴의 은행 강도 건수는 10년 전에 비해 70% 감소했다.한편 디지털 기술로 인해 높아진 안전성, 효율성과 달리 새로운 문제들도 등장하고 있다. 과거 현금은 불투명한 거래 수단으로 여겨졌다. 특히 대규모 범죄 조직이 현금 거래를 선호했다. 기록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자화폐가 거래에 통용되기 시작하면서 현금은 불투명하고, 전자 거래는 투명하다는 이분법이 성립하지 않고 있다. 《현금 없는 사회》의 저자 로스 클라크는 디지털 결제 및 전자화폐의 발달로 인해 오늘날 해외 범죄자들은 더 이상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해외 범죄자들의 재산 은닉 수단인 런던의 최고급 부동산 매입 과정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부동산을 구입하기 위한 수단으로 현금이 아니라 전자화폐를 사용했다. 만약 추적을 피하기 위해 과거와 같이 대량의 현금으로 거래했다면, 대규모 현금 수취에 따른 신고 의무가 있는 부동산 중개인의 조치로 인해 범죄 집단이 발각됐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금 없는 사회’를 위한 생산적인 고민 필요
현금 없는 사회는 디지털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노령 인구와 신용도가 낮은 취약계층의 경제활동을 제한할 수 있다. 노령 인구는 여전히 화폐를 선호해 식당이나 카페에서 현금을 받지 않으면 거래에 참여하기가 어렵다. 신용카드 발급이 어려운 학생이나 저소득층도 마찬가지다. 중앙은행의 영향력 감소도 우려된다. 화폐 발행과 이를 통한 통화가치 조정이라는 고유 권한이 약해지면서 중앙은행의 통제력이 약화될 경우 경제 전반에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현금 사용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700억크로나 이상을 보유한 시중은행은 무조건 현금 관련 업무를 하도록 중앙은행법을 개정하고 있으며, 미국 워싱턴DC 의회는 현금을 받지 않는 식당과 소매점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일부에서는 이런 한계들을 지적하며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용자의 공감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신기술에 대한 환호는 누군가 억지로 저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기술 등장이 빚어내는 명암은 원래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과 제도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신기술에 대한 고민의 초점은 그 도입 여부가 아닌, 어떻게 하면 혜택을 높일 수 있을 것인가에 있어야 생산적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