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가업승계는 생각도 말라는 상속세

"'가업승계는 불평등' 죄악시 말고
경영노하우 살리는 백년기업 위해
세율 낮추고 공제요건 완화해야"

허희영 < 한국항공대 교수·경영학 >
경영의 목표는 무엇일까? 이윤의 극대화가 흔하고 쉬운 답이다. 경영학을 배우는 학생이라면 기업가치의 극대화가 정답이다. 그러나 창업하고 성공한 오너경영인이라면 평생의 가업을 후대에 승계시켜 영속기업이 되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일 것이다.

최근 승계를 포기하는 기업이 부쩍 늘었다. 나빠진 환경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중견기업연합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견기업 대부분은 가업을 물려줄 계획이 없다고 한다. 상속·증여세 부담이 주된 이유다. 실제로 작년 한 해 인수합병(M&A)시장에는 300개가 넘는 중견기업이 매물로 나왔다. 중소기업에 대한 상속세 할증평가 적용의 유예기간이 끝나는 내년부터는 기업의 매각과 폐업이 더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세계 각국은 법인세와 함께 상속세를 꾸준히 낮춰 가업승계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13개국은 상속세가 없다. 이 중 11개국은 상속세의 부작용을 겪은 나라들이다. 70%에 달하는 상속세로 인해 창업주 가문의 해외탈출 러시와 세수 감소로 인한 경제 손실을 경험한 끝에 2005년 상속세를 폐지한 스웨덴이 대표적인 경우다. 상속세가 있는 나머지 23개국 중에서 명목 최고세율이 50%를 초과하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일본, 프랑스, 그리고 80%인 벨기에를 포함해 4개국뿐이다.

대부분 국가에서 직계가족이 승계하는 경우에는 더 낮은 상속세율을 적용하거나 큰 폭의 공제혜택을 주고 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17개국에서는 가업승계 시 상속세를 아예 면제한다. 나머지 국가들도 상속세율을 낮춰주거나 공제혜택을 늘려준다. 명목적으로 상속세율이 가장 높은 벨기에의 차세대 오너들이 실제로 부담하는 세율은 그래서 3%로 낮아진다.

일본은 작년 4월부터 신사업승계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직계비속에 대해 납세유예 대상 주식 수의 상한을 없애고, 승계 후 5년간 80% 이상이라는 고용조건을 못 지키는 경우에도 계속 유예되도록 바꿨다.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데다 높은 상속세 때문에 가업의 대물림을 주저하는 중소기업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가업승계에 상속세를 과세하는 OECD 회원국도 현재 상속세 최고세율은 평균 25% 안팎이다.우리나라의 상속세는 세계적 흐름과 정반대다. 가업을 승계하더라도 실제 상속세율은 명목세율보다 오히려 더 높고, 승계조건도 까다롭다. 회사지분으로 승계하는 경우에는 50%의 기본세율에 경영권 프리미엄이 더해져 최고 세율은 65%까지 올라간다. 단연 세계 최고 상속세율이다.

외국처럼 세율을 인하해 주는 경우도 없고 대기업은 상속세 공제대상에서 제외된다. 중소기업도 상속세를 공제 받으려면 상속 전후 10년 이상 대표직과 지분을 모두 유지해야 한다. 공제받을 수 있는 최대한도는 500억원에 불과하다. 당연히 제도의 실효성은 낮다. 2017년 가업상속공제제도의 이용건수는 91건이 전부다.

선진국들이 가업 승계를 배려하는 것은 축적된 경영 노하우와 계속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다. 가업 승계를 부의 대물림과 불평등 프레임으로 다루는 경우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경영권 승계에 대한 일률적 과세는 국민연금의 경영권 행사처럼 대기업 오너경영에 심각한 위협이다.

상속은 사유재산제도의 반영이고, 유산은 생의 흔적이다. 원하는 사람에게 맡겨 기억하고 후손에게 전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문제다. 기업경영의 목표와 가치를 보호하는 제도개선이 시급하다. 최고세율 인하와 최대주주의 주식할증평가 폐지, 공제요건의 대폭 완화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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