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만들면 뭐든지 法 돼서야…의원입법 제한장치 필요하다

국회 파행이 장기화되고 있지만 국회의원들의 법안 발의는 크게 늘어나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한경 5월 7일자 A6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실적 쌓기용’ 의원입법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의원입법 발의 건수는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2121건에 달했다. 2016년 4월 총선을 1년 앞둔 19대 국회 당시 같은 기간(2015년 1월 1일~4월 30일)의 1469건보다 44.3% 늘었다.

각 당은 현역 의원의 의정 활동을 평가할 때 입법 수행 실적을 주요 지표로 삼는다. 시민단체와 언론 등에서 하는 의정활동 평가도 마찬가지다. 이렇다 보니 국회의원들이 공천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숫자나 자구만 약간 바꾼 법 개정안을 ‘건수 올리기용’으로 남발하고 있다. 하루에 13건의 법안을 발의한 의원이 있을 정도다.이런 식의 ‘맹탕’ 법안들은 국회 업무만 가중시킬 뿐, 가결률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의원입법의 문제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국회 심사 전에 정부 내 규제심사를 거쳐야 하는 정부입법과는 달리 의원입법에는 이렇다 할 규제심사 과정이 없다. 적잖은 규제 법안이 의원입법을 통해 탄생하는 배경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은 국회부터 규제영향 분석을 하라고 권고했을 정도다.

정부입법은 부처협의, 당정협의, 입법예고, 공청회, 규제심사,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국무회의를 거쳐야 한다. 이에 비해 의원입법은 입안, 법제실 검토, 비용추계만으로 상임위원회로 간다. 국회법은 의원입법에도 공청회를 열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상임위 의결로 생략 가능하다. 비용 추계 역시 국회예산정책처의 비용추계서만 첨부하면 된다. 이렇다 보니 의원입법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통로가 돼버렸다.

입법권 남용을 막고 국회업무 효율화를 꾀하기 위해서도 의원입법 제한 장치가 필요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규제영향 평가를 의무화하고 재원조달 방안을 포함하는 ‘페이고(pay-go)’ 원칙만이라도 도입해야 한다. 미국 영국 등이 의회에 별도의 규제심사기관을 둔 것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사소한 자구 수정 등을 담은 유사 법안들은 별도로 처리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무책임한 의원입법 ‘폭주’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