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아베가 던진 '무조건 대화' 카드, 北 김정은 받을까

참의원 선거 앞둔 아베, '재팬패싱' 논란 탈출용 승부수 '지적' 나와
극우 눈치 보며 오락가락…"北 수용 가능성 낮아 국내용" 비판도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조건 없는 대화'를 강조하며 북한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과 관련, 그 배경을 놓고 다양한 관측이 나온다.우선 일본 언론들은 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재팬 패싱(일본 배제)' 비판에서 탈출하기 위해 북한에 대해 '무언가 하고 있다는 모습'을 강조하기 위한 '국내용' 발언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미 대화에 집중하고 있는 북한이 굳이 일본의 의도가 석연치 않은 제안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 전략 바꾼 日…'납치 진전 없이 협상 없다'→'무조건 대화'
"단거리 발사체 정도로 미일 정상이 통화를 했다고 생각하긴 어렵다.여러 움직임이 있었을 것이다.

"
8일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의 이런 발언을 전했다.

미일 정상의 6일 밤 통화가 북한의 발사체에 대한 대응 목적보다는 일본의 대북협상 방침 변경을 알리는 데 무게가 실렸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일본 정부는 한동안은 납치문제에 진전이 있을 경우 북일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했지만, 최근 조건 없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로 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관방 부(副)장관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에서 이런 방침 변경을 설명했다.

일본은 작년 초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전후만 해도 한반도 화해 분위기를 북한의 '미소 외교'라고 깎아내렸고, 이후에도 '북한에 대한 압력 강화'를 줄기차게 강조해왔다.하지만 일본 국내에서 일본만 한반도 화해 분위기에서 빠져 있다는 '재팬 패싱' 논란이 제기되자 올해 연초부터는 북한에 대한 우호적인 발언이 부쩍 많아졌다.

아베 총리는 지난 1월 국회 시정연설 이후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북한 국무위원장)과 직접 마주 보며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발언을 반복하며 북한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일본은 지난 3월에는 북한을 신경 쓰며 이전 11년간 EU와 공동 제출했던 유엔 인권이사회의 대북비난 결의안 작성에서 빠졌고, 지난달 나온 외교청서에는 예년에는 있었던 '북한에 대한 압력'이라는 표현을 삭제하며 북일 정상회담 성사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일본 정부의 바뀐 대북 협상 방침은 북한의 그간 주장을 수용한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납치문제는 이미 해결이 끝난 일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는데, 일본은 방침 변경을 통해 '납치문제의 진전'을 북일 협상의 전제조건에서 뺐다.

일본 정부는 북한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반복해서 밝힌 것도 고려해 북한이 요구할 경우 식민지 지배 과거 청산 문제에 대해서도 북한과 대화를 하기로 했다.
◇ 선거 앞두고 '재팬패싱' 애타는 일본…'국내용' 의심 진해
일본 정부가 '조건 없는 북일 정상회담'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온 데에는 한반도를 둘러싼 '재팬 패싱' 상황에서 벗어나기 좋은 상황이라는 판단과 북한과의 대화를 올여름 참의원 선거에 적극적으로 이용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마이니치신문은 아베 총리의 방침 변화를 '도박'이라고 표현하며 "지나치게 국내용으로 치우친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아베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을 위한 전제에서 '납치문제'를 뺀 것은 '도박'으로, 초조함이 보인다"며 "북핵 6자회담이라도 열리면 주변국 중 유일하게 북한과 정상회담을 하지 않은 일본만 논의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이니치는 사설에서는 "아베 총리의 '무조건 정상회담' 발언은 외교상의 메시지라기보다는 국내용으로 받아들여진다.

방침 전환에 합리적인 전략이 없어 보인다"며 "한반도 주변국 정상 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담하지 않은 사람은 아베 총리뿐이라는 비판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는 지난 5일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 문제에서 완전히 '모기장 밖'에 있었던(배제됐던) 아베 총리가 김 위원장과 회담 용의를 밝혔다"며 "그 이유는 지금까지 아베 총리가 '북방영토'(일본이 주장하는 쿠릴 4개 섬의 명칭) 문제를 포함해 아무런 외교적 성과를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아베 총리가 '비장의 카드'를 지금 내놓은 배경에는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끝난 지난 2월의 북미 정상회담이 있다며 "북한은 대미 관계가 어려워지면 타국에 눈을 돌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는 정부 소식통의 말을 전했다.

북한이 북미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과 거리를 좁히면 한반도 문제에 관한 발언권을 높이고 납치 문제도 진전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베 총리가 북한 문제에서 대화 쪽으로 돌아선 것에는 (북한과 대화하는) 미국과 보조를 맞추겠다는 생각이 엿보인다"며 "아베 총리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은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고 통화를 한 뒤다"고 설명했다.
◇ 북한, 아베의 '카드' 받을까?…日언론은 부정적 전망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렇게 대북 협상 방침을 바꾼 일본 정부는 베이징 대사관 루트 등을 통해 북한에 북일 정상회담의 조기 실현 의사를 타진할 계획이지만, 북한이 제안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도쿄신문은 이날 아베 총리의 '조건 없는 북일 정상회담' 제안에 대해 "북일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일본이 우선 인적 왕래를 인정해야 한다"는 북한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다른 북한 관계자는 이 신문에 "아베 총리의 진의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무조건'이라고 하지만 납치문제를 어떤 식으로 다루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 외교관 출신으로 한국에 사는 한 탈북자는 아사히신문에 "북한은 일본이 항상 미국에 붙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일본을) 이용할 부분이 많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며 북일 정상회담 성사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본이 '조건 없는 회담'이라는 새 원칙을 내놨지만, 자국 내 극우 강경론자들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돼 이를 계속 지켜나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아베 총리의 발언이 나온 다음날인 7일 "방침 변화는 없다"(고노 다로 외무상), "(이전 주장을) 더 명확한 형태로 말한 것"(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라고 얼버무리며 납치문제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을 신경 썼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