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核 개발 재개할 것" 폭탄 선언…美 제재 복원에 초강경 대응

로하니, 8일 핵협정 사실상 파기
농축 우라늄 한도 이상 생산
이란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핵협정(JCPOA) 탈퇴 1주년을 맞아 핵개발 활동 일부를 재개한다고 선언했다. 대(對)이란 제재 강도를 높이고 있는 미국과 국제사회에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이란 핵협정이 파기될 위험에 처하면서 이란 핵을 둘러싼 긴장이 재차 높아지는 양상이다. 미국은 중동에 항공모함을 급파하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이라크로 보내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이란 외무부는 8일 성명을 통해 “이란은 핵협정에서 약속했던 의무 중 일부를 이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외무부는 자국에 주재하는 핵협정 서명국(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 대사들에게 관련 내용을 담은 서한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이날 오전 대국민 연설을 통해 “오늘이 핵협정의 종말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해 이번 발표가 이란의 핵협정 탈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란은 핵협정으로 동결된 원심분리기 생산을 부분적으로 재개하고, 한도 이상의 우라늄 농축을 하기로 했다. 핵협정을 적용받은 이란은 그동안 우라늄을 경수로 연료용으로 쓰이는 농도인 3.67%까지만 농축했다. 또 2030년까지 보유량도 최대 300㎏으로 제한받았다.

미국의 제재 복원으로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이란이 핵개발 재개를 통해 맞대응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지난해 대이란 경제 제재를 다시 가동한 데 이어 지난 3일 핵협정에서 허용된 이란의 핵 활동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5일에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 등 이란의 위협 증대를 이유로 중동에 항공모함과 폭격기 기동부대를 파견했다.이란의 이번 대응은 미국의 압박을 이유로 이란과 단교하고 있는 유럽을 겨냥한 것으로도 분석된다. 로하니 대통령은 “유럽은 이란에 한 경제적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며 “유럽이 60일 안에 이란과 협상해 핵협정에서 약속한 금융과 원유 거래를 정상화하지 않으면 우라늄을 더 높은 농도로 농축하겠다”고 압박했다. 로하니 대통령이 정한 60일은 핵협정에서 정한 이의 제기 절차에 걸리는 기간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핵협정에는 상대 국가가 협정 내용을 위반했다고 판단될 경우 이의를 제기하고 최종 결론을 내는 절차가 담겨 있다.

이란 핵협정이 완전히 파기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CNN은 “부분적일지라도 이란이 핵개발을 재개하게 된다면 핵협정이 사문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경우 중동에서의 핵 위기 국면이 재연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CNN은 미국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이라크를 포함한 지역에서 이란의 군대가 미군을 타깃으로 삼을 것이라는 구체적이고 신뢰할 만한 정보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의 이번 발표가 미국의 제재를 약화시키기 위한 ‘거짓 엄포’라는 관측도 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이란의 핵개발 재개 발표는 블러핑(bluffing·허풍)”이라며 “이란은 이번 발표로 유럽 국가들이 미국 제재를 핑계로 자신들과 단교하고 있는 상황을 바꿔보려 하고 있다”고 했다.미국은 강경 대응 방침으로 맞서고 있다. 항공모함 전단을 중동 페르시아만에 급파한 데 이어 당초 독일을 방문할 예정이던 폼페이오 장관을 급히 이라크로 보냈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방문한 폼페이오 장관은 아델 압델 마흐디 이라크 총리와 회담한 뒤 “중동의 위협이 이란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동맹국들과 미국의 관계는 여전히 굳건하다”고 말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