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에도 지친 이 위로하고 희망의 글 남긴 '문학 전도사'

장영희 교수 10주기
에세이 특별판 출간·낭독회 등 추모 열기
2002년 미국 하버드대 교환교수로 재직하던 장영희 교수(왼쪽)가 오빠 장병우 현대엘리베이터 사장과 캠퍼스 근처에서 만나 활짝 웃고 있다. /샘터 제공
“나의 독자들과 삶의 기적을 나누고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고, 나는 지금 내 생활에서 그것이 진정 기적이라는 것을 잘 안다.”(산문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중에서)

2009년 5월 9일 ‘문학 전도사’ 장영희 서강대 교수가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장 교수의 10주기를 맞아 그를 기리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장 교수의 마지막 에세이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의 특별판이 최근 출간됐고 기일에 맞춰 그를 기리는 추모 낭독회도 열린다.장 교수는 생후 1년 만에 찾아온 소아마비 장애를 이겨내고 영문학자로 강단에 섰다. 교수뿐 아니라 번역가, 산문가, 칼럼니스트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생애 마지막 9년간 암 판정을 세 번이나 받았다. 암 투병 중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강단에 서고 글을 썼다.

샘터가 지난달 100쇄 돌파를 기념해 특별판을 내놓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장 교수가 암 투병으로 힘든 상황에서 써내려간 책이다. 2009년 5월 8일 인쇄된 책이 나왔지만 그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끝내 완성된 책을 보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글은 수많은 이에게 희망을 전했다.

강한 항암제를 맞은 날 장 교수는 썼다. “순간 나는 침대가 흔들린다고 느꼈다. 악착같이 침대 난간을 꼭 붙잡았다. 마치 누군가 이 지구에서 나를 밀어내듯, 어디 흔들어 보라지, 내가 떨어지나, 난 완강하게 버텼다.” 생전 자신의 삶을 ‘천형(天刑) 같은 삶’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는 ‘천혜(天惠)의 삶’이라고 강조했다.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될 것이라고 믿어서다.장 교수, 김점선 화백과 함께 자칭 ‘명랑삼총사’였던 이해인 수녀는 “겸손하고도 당당하며 따뜻한 사랑이 넘쳤던 그와의 만남은 내게도 소중한 선물이었다”며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장영희만의 감칠맛 나는 향기와 빛깔로 깊은 감동을 주는 이 책의 100쇄 기념을 축하하자니 새삼 그의 미소가 그립다”는 추천사를 남겼다.

9일 저녁엔 서강대 마태오관에서 장 교수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그가 남긴 글을 읽고 추억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이해인 수녀와 피아니스트 신수정을 비롯해 동료, 제자들이 함께한다. 장 교수의 제자인 장동준 씨가 직접 작사·작곡한 ‘Crazy Quilt’를 연주한다. 고인을 유난히 아꼈던 오빠 장병우 현대엘리베이터 사장은 “영희의 책에 보면 ‘잊히지 않는 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는 문장이 있다”며 “우리 마음에 살아 있는 영희를 기억하는 자리에서 그리움을 다독거리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병석에서 지친 몸으로 마지막 교정을 본 책이 많은 이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쁘다”며 “더 많은 독자들이 영희의 글을 통해 사랑을 만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