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떡볶이·와사비쫄면까지…'불황'에 매운 맛 찾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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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떡볶이 매장수 1위 올라, '매운 맛' 이미지 어필광화문 인근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윤현우씨(38)는 요즘 점심시간만 되면 마라탕집을 찾는다. 대기시간이 길어 1시간 남짓인 점심시간의 일부를 포기해야 하지만 기꺼이 기다려 마라탕을 먹는다는 게 윤씨의 얘기다. 그는 "점심시간에 마라탕을 먹고 땀을 한 번 흘리면 업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이 든다"며 "매운 맛에 중독된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사천 향신료 '마라', 국내 매운 맛 열풍 주도
"경기불황·일상 스트레스 날릴만한 '자극' 찾으려는 심리"
대한민국이 매운 맛에 빠졌다. "요즘처럼 경기가 불황이고 일상이 지루할수록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릴만한 자극적인 맛을 찾게 된다"는 게 요식업 종사자들의 경험칙(經驗則)이다. 그래서일까. 외식·식품업계의 트렌드도 매운 맛을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떡볶이, 마라탕 등 같은 메뉴부터 과자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가리지 않는다.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업체 신전떡볶이는 현재 매장수 약 640개로 국내 떡볶이 프랜차이즈 중 가장 많은 매장수를 보유하고 있다. 1999년 대구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 업체는 2008년 서울로 진출한 뒤 '아딸(현 감탄떡볶이)', '죠스', '국대' 등 서울 유명 업체들을 모두 제치고 지난해 말 1위에 올라섰다.
신전떡볶이가 그동안 지방 프랜차이즈 업체들에 '불모지'로 꼽혔던 수도권 가맹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중적인 맛을 포기하는 대신 '매운 맛 마니아'들을 공략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신전떡볶이 관계자는 "브랜드를 처음 만들 때부터 소비자들이 먹고 나면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중독성 강한 매운 맛을 선보이려고 했다"며 "여기에 후추라는 대구 떡볶이의 개성이 더해져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최근 매운 맛 열풍은 '마라(麻辣)'가 주도하고 있다. 중국 사천지방의 대표적인 향신료인 마라는 산초나무 열매인 화자오와 마른고추를 기름에 넣고 몇 달간 발효시킨 것이다. 한자로 마(麻)는 마비, 라(辣)는 맵다는 뜻으로 '얼얼한 매운 맛'을 말한다. 마라를 활용한 대표적인 메뉴는 마라탕이다. 마라탕은 사천식 샤브샤브에서 변형된 요리로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궈'와 비슷한 메뉴다.마라 요리 열풍은 신조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선 '혈중 마라농도(혈중 알코올농도에 빗댄 말)', '마세권(마라 음식점 인근·역세권에서 따온 말)', '마라위크(마라 요리를 먹는 주간)', '마덕(마라 덕후)' 등의 단어가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대학생 설샛별 씨(23)는 "마라 특유의 알싸한 매운 맛에 중독돼 요즘엔 일주일에 다섯 번은 마라 요리를 먹는다"며 "요새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면 메뉴는 무조건 마라 요리"라고 말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매장을 내던 마라 전문점들이 백화점에도 입점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현재 무역센터점, 디큐브시티점, 현대시티몰점 등 3곳에 입점해 있는 '왕푸징 마라탕'은 올해 매장 수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매장별 일평균 방문객이 100~300명 수준"이라며 "월평균 매출도 당초 목표 대비 점포별 30~50% 초과 달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외식업계에서는 앞다퉈 마라를 활용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bhc치킨은 최근 마라샹궈(마라 볶음요리)를 치킨에 접목한 '마라칸치킨'을 출시했고, BBQ도 '마라 핫치킨'을 내놨다. 편의점 CU는 지난해 말 업계 처음으로 'CU 마라탕면'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출시 3개월 만에 15만개가 팔렸다. 이후에도 CU는 '마라볶음면', '마라족발', '마라새우' 등 마라 시리즈를 계속 선보이고 있다.식품업계도 매운 맛 열풍에 올라타고 있다. 오리온은 이달 초 '감자엔소스닷청양데리야끼소스맛'을 내놨고, 오뚜기는 지난해 출시한 '진짜쫄면'의 후속 제품으로 '와사비 진짜쫄면'을 지난달 출시했다. 삼양식품은 한정 제품으로 내놨던 '핵불닭볶음면'을 정식 제품으로 출시하고 있다. 이 제품은 매운 맛의 정도를 나타내는 스코빌지수(SHU)가 1만에 달한다. 신라면 스코빌지수가 2700, 청양고추가 4000가량이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매운 맛에 대한 선호도가 강하다"며 "마라 열풍에서 보듯 최근에는 단순히 매운 맛에만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매운 맛에 대한 즐거움이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