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품위 있는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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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우 <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jwpark@seoulbar.or.kr >사람마다 인생의 목표는 각양각색이다.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려는 사람, 돈을 많이 벌려는 사람,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사람, 자기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으려는 사람 등 다양하다.
필자의 목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설 좋은 실버타운에서 연명치료 없이 품위 있게 죽는 것이다. 아직 죽음을 염두에 둘 만한 나이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몇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죽음이라는 것이 우리 삶에서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른들 말씀으로도 사람이 여러 가지 복이 있어야 하는데, 그중 으뜸이 바로 ‘죽을 복’이라고 한다.
작년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됐다. 환자의 연명치료 여부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도 배우자와 부모, 자녀의 동의가 있으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게 됐다.
중단 가능한 연명치료수단은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이다. 최근 체외생명유지술(ECLS),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 등도 중단 가능한 연명치료수단에 추가됐다. 이런 시술은 치료 효과 없이 죽음에 이르는 기간만 단순히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이다.그러나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인위적 영양공급’은 중단 가능한 연명치료수단에 아직 포함되지 못했다. 임사(臨死) 과정의 환자는 일반적으로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인위적으로 코, 입을 통해 음식물을 투입하는 것은 유족들의 심리적 위안이나 의료진의 면책을 위한 것일 뿐이다. 환자를 더 고통스럽게 하고 평온한 죽음을 방해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환자가 사전에 스스로 결정한 대로, 치료 효과 없는 연명치료수단에 기대지 않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의 감각 중 가장 마지막까지 작동하는 것이 ‘청각’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임종 때 유족 및 가까운 친지들은 이런 점을 유념해 환자가 듣기 거북한 말을 삼가고 환자가 편안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안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필자가 원하는 품위 있는 죽음을 맞기 위해서는 일단 재력이 뒷받침돼야 하고, 최종 사인이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니라 질병으로 인한 것이어야 하고, 임종을 지켜줄 유족과 친지가 있어야 하는 등 요건이 상당히 까다롭다. 소위 죽을 복이 있어야만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사람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습성이 있다. 부디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기억하고 싶은 것을 떠올리며, 사랑하는 아이들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과 작별인사하고 싶다. ‘죽을 복’에 대한 기대가 너무 과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