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가족 간 분쟁과 미성년 자녀의 기본권

갈등이 증폭되기 십상인 가족 간 소송
아이를 자기편에 서도록 강요하는 대신
서로가 상대를 존경하는 모습 보여야

윤성근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가족 간 갈등으로 법정에 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 법원은 누가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기관이 아니다. 그런데 가족 간 소송에서는 상대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빠지지 않는다. 더구나 오랫동안 쌓인 갈등은 여러 얼굴을 가진 괴물과 같아서 한 단면에 국한된 재판만으로는 모두가 승복하는 분쟁 해결이 쉽지 않다.

가족 간 갈등이 송사로 번져 변호사들이 손을 대기 시작하면 소송기술적인 주장을 하게 된다. 상대방에게 입증 책임이 있는 것은 설령 사실이더라도 일단 부인하고, 정밀한 입증이 필요 없는 곳에서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과장하기도 한다. 분명히 돈을 줬는데 받은 적이 없다며 입증해보라거나 자기를 무능하고 악의에 찬 사람으로 묘사하는 준비서면을 받아보면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과정에서 갈등이 증폭된다.

이런 일이 성인 간에 벌어진다면 어쨌든 스스로 책임질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분쟁의 결과에 아이들의 운명이 좌우되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은 스스로 방어할 능력도 없고 자신의 선택으로 어떤 가정에 태어난 것도 아니다. 어른들이 싸움에 골몰한 나머지 아이에 대한 고려는 방치된다. 때로 미성년 자녀의 진술서를 증거로 제출하거나 법정에 증인으로 불러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아이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부모를 가질 권리가 있으며, 마찬가지로 자기가 존경할 수 있는 부모를 가질 권리도 있다. 인정받고 싶은 것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에 속한다. 아이들은 자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하면 먼저 부모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한다.아이에게 자기편에 서서 상대방에 대한 비난에 동참하기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신앙인에게 믿음을 부정하도록 강요하는 것만큼 잔인한 일이다. 나에게는 증오의 대상인 배우자라도 아이에게는 세상에 하나뿐인 아버지이거나 어머니이며, 아이가 자의식을 형성하며 처음 준거로 삼았던 존재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이혼 과정에서 상대방을 비난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겠지만 적어도 아이 앞에서는 자제해야 한다. 비난을 통해 상대방만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낮아지며, 존경하기 어려운 부모를 갖게 된 아이는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이혼은 때로 불가피하다. 그리고 이혼한다고 해서 당연히 결손가정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아이에게 부모 어느 한쪽을 부정하도록 강요하거나 결과적으로 부모 모두에 대한 존경심을 잃게 만들면 그때 결손가정이 된다. 부부는 아이 앞에서 상대방을 칭찬하고 존경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아이가 존경하는 부모로부터 인정받으면 바람직한 자존감이 형성되고 사회성도 저절로 갖춰진다.

유명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자의식을 갖게 된 인간은 생사를 건 투쟁을 통해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일단 상대방을 노예로 인식하면 노예의 인정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정이 될 수 없어서 변증법적 반전이 시작된다. 인간에게 의미 있는 인정이란 동등한 인격체로부터의 인정이다. 부부가 상대방을 정복하거나 제압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굴종하는 노예로부터 인정받기보다는 훌륭하고 존경할 만한 배우자로부터 인정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부모 입장에서도 결국 자녀에게 존경받고 인정받는 것은 인생의 성공을 좌우하는 척도가 된다. 치열한 권력 의지를 가지고 목숨을 건 투쟁을 통해 많은 사람을 짓밟아야만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이혼했더라도 아이는 여전히 진심으로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말한다면 세 사람 모두 인생에서 중요한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동성혼이나 ‘시빌 파트너십’을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 문제에 접근할 때 그런 가정에 태어나거나 입양되는 아이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불이익 없이 대할 것인지, 그런 가정이 깨지는 경우 아이에 대한 양육이나 면접교섭은 어떻게 이뤄질 것인지 등의 문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동성혼 당사자들은 어쨌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형성해간다. 그러나 그 가정에서 자라날 아이는 목소리조차 없는 소수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회적 인식과 제도 모두에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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