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兆 임금청구 소송 쓰나미 온다"…'파산 공포'에 떠는 택시회사들

大法, 지난달 "최저임금 맞추려
근로시간 단축은 불법" 판결
경기 의정부시에서 택시회사를 운영하는 황용덕 씨(76)는 지난달 30일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으로부터 ‘체불임금 지급 청구’란 제목의 내용증명을 받았다. 퇴직한 기사들이 노조를 통해 “4월 18일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한 달 안에 2016~2019년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황씨는 “기사 1인당 3000만원을 청구할 것이라고 하는데 갑자기 수십억원을 어디서 구하느냐”며 “택시사업을 포기할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털어놨다.

전국 법인택시기사 노조들이 회사를 상대로 미지급 임금을 청구하는 단체소송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자 택시회사들이 ‘파산 공포’에 떨고 있다. 지난달 대법원은 “택시회사가 소속 기사들의 취업규칙상 소정근로시간을 줄여 최저임금을 맞춘 행위는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택시노조가 추가 임금을 달라며 단체소송 움직임을 보이면서 소송액이 최대 1조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기사 1인당 500만~3000만원 청구

대부분 법인 소속 택시기사의 임금은 일종의 기본급인 고정급과 운행 실적에 비례하는 수당인 초과운송수입으로 이뤄진다. 2009년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택시기사의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초과운송수입이 제외되자, 당시 노사는 단체협약을 통해 고정급 책정 기준이 되는 소정근로시간(취업규칙으로 정하는 휴게시간을 제외한 근로시간)을 단축했다. 업계 불황으로 사납금 인상 없이는 고정급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맞추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노사가 합의한 내용이었다. 그동안 택시기사의 소정근로시간은 지역마다 2~6시간으로 다양하게 운영돼 왔다.

지난달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노사 합의를 거쳤더라도 해당 취업규칙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놨다. 경기 파주시의 한 법인택시 기사 다섯 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소송 사건에서 노조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최저임금제는 근로자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강행 법규”라며 “이를 회피하기 위해 소정근로시간을 단축한 취업규칙 조항은 탈법 행위로서 무효”라고 지적했다.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전국 10만 명에 달하는 택시기사들이 단체행동에 나설 조짐이다.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는 지역마다 단체소송에 참여할 기사들을 모집 중이다. 김영만 지부장은 “공공운수노조 소속 기사 500명은 거의 모두 원고로 참여할 것”이라며 “다른 노조 소속 기사들도 함께 모집해 한 소송에서만 원고 1000명을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국택시노조는 사측과 교섭에 나선 뒤 합의에 실패하면 바로 소송전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기사 1인당 청구 금액은 소정근로시간 단축 정도에 따라 적게는 500만원에서 많게는 3000만원에 이를 전망이다. 총 소송액이 1조원대에 이를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영난 고려 부족한 ‘반쪽짜리’ 판결

업계에선 대법원이 택시업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반쪽짜리 판결을 내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계속된 불황에 보유 택시가 50대 이하인 소규모 택시회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영세한 택시업계 전체가 도산할 지경이라는 지적이다.전국택시운송사업연합회 관계자는 “택시 한 대에 6000만원 정도 가치가 있다면 2교대하는 기사 1인당 3000만원씩 청구할 경우 택시 한 대를 팔아야 자금 마련이 가능하다”며 “소송까지 가서 지면 차고지 부지나 택시요금 카드결제분 압류가 이뤄질 텐데 사실상 회사를 몰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노사 합의로 마련한 취업규칙을 뒤집으며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은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조희대 이기택 김재형 이동원 대법관 등 네 명을 제외한 아홉 명 다수 의견으로 “택시운전근로자 측이 자발적으로 취업규칙 변경에 합의했고, 회사에 예상치 못한 다소 불리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정이 있다고 해서 최저임금법 취지에 위배되는 취업규칙의 효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법조계에선 현 정부 들어 대법관 구성이 바뀌며 통상임금 등 노동 사건에서 대법원의 추가 ‘왼쪽’으로 기울었다는 지적이 많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