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사치를 惡으로만 본 명나라, 산업혁명 기회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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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의 제국중국과 영국을 역사적으로 비교하는 연구는 사학계의 단골 주제다. 주된 논제를 단순화하면 ‘산업혁명은 왜 중국이 아니라 영국에서 일어났을까’다. 대표적인 저술 중 하나가 케네스 포메란츠의 《대분기》다. 포메란츠는 18세기 영국과 중국 양쯔강 삼각주 지역의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세계”에 주목했다. 두 지역이 생활 수준과 소비 방식, 농업의 상업화, 가내 수공업 발전 등에서 큰 차이가 없었음을 논증했다.
우런수 지음 / 김의정 외 옮김
글항아리 / 596쪽 / 2만9000원
대만 사학자 우런수가 쓴 《사치의 제국》이 주로 다루는 시기는 《대분기》에서 100~200년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사에서 사치 풍조가 가장 만연했던 명(明)나라 말기다. 저자는 이전 학자들의 연구에서 분석 틀을 가져와 명 말기 소비 현상을 경제학·사회학·문화인류학적으로 파고든다. 당시 사치 풍조의 핵심이던 가마, 복식, 여행문화, 가구 수집, 음식 등을 방대한 사료를 인용해 고찰한다.
우런수는 명 말기 성행한 사치 풍조가 중국 최초의 소비사회 형성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명 말기가 중국의 이전 사치 풍조 시기와 다른 점은 크게 여섯 가지다. △시장 구매율 증가 △사치품의 일상품화 △사치 소비의 보편화 △최신 유행 형성 △신분 차등 제도의 붕괴 △새로운 사치 관념 출현 등이다. 이는 명 중엽 이후 경제·사회·사상·문화 등에서 일대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생산력의 회복과 해외 시장과의 교류, 특히 백은의 대량 수입은 화폐경제와 상품경제의 발전을 촉진했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도시화의 성장과 발달로 소비력을 갖춘 대중이 등장했다.
이런 현상은 영국학자 매켄트릭과 브루어 등이 소비혁명론을 주창하며 분석한 18세기 초·중엽 영국 사회와 흡사하다. 이들은 영국에서 탄생한 소비사회가 대량 생산을 가져와 산업혁명이 도래하는 길을 개척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중국의 소비사회는 왜 산업혁명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사치관(觀)의 차이에서 찾는다. 당대 중국 지식인과 관리 다수가 사치 소비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해 검소함을 숭상하고 사치를 배척하도록 백성을 교화한 데 비해 영국에선 사치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한 소비론이 정치 경제 등 사회 전반에서 ‘새로운 지식’으로 포용됐다는 것이다.《대분기》에 관심이 있다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겠다. 학술서치고는 독해가 그리 어렵지 않다. 특히 명나라 말 소비현상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과 풍부한 논의는 현대사회의 소비문화를 이해하는 폭을 넓혀 줄 만하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