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 예비당첨자 '공급물량 5배수' 확대, 실수요자 기회 넓힌다

현금부자 '줍줍' 쓸어담기 방지
대출 막혀 '반쪽 대책' 지적도
오는 20일부터 투기과열지구에서 아파트 청약 예비당첨자 수가 공급 물량의 다섯 배까지로 늘어난다. ‘현금 부자’들이 당첨자 계약이 끝난 뒤 남은 미계약 물량을 쓸어 담는 행위를 막기 위해서다.
국토교통부는 20일부터 투기과열지구 예비당첨자를 공급 물량의 다섯 배로 늘려달라고 각 지방자치단체에 요청했다고 9일 밝혔다.현행 주택공급규칙 제26조는 예비당첨자 비율을 공급 물량의 40%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서울과 경기 과천, 성남 분당구, 광명, 하남, 대구 수성구 등 투기과열지구는 국토부 권고에 따라 작년 5월부터 80%가 적용되고 있다.

공급규칙에 따라 당첨자와 예비당첨자가 계약을 포기한 물량은 무순위 청약으로 공급한다. 청약통장 보유 및 무주택 여부와 관계 없이 신청이 가능해 현금이 많은 자산가나 다주택자에게 미계약 물량이 돌아가는 부작용이 있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최초 당첨자가 계약을 포기하면 실수요자인 1·2순위 내 후순위 신청자의 계약 기회가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새 아파트 청약의 예비당첨자 선정 비율을 대폭 확대한 것은 청약통장을 가진 실수요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잦은 청약제도 변경과 각종 부동산 규제로 미계약 물량이 늘면서 현금 부자들의 무순위 청약 혜택만 커졌다는 비판이 나오자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등 청약시장 활성화 방안이 함께 마련되지 않으면 ‘반쪽 대책’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분양업계에 따르면 아파트 청약은 가점제, 추첨제를 통해 1·2순위 신청자 중 당첨자와 예비당첨자를 선정하지만 이들이 계약을 포기하거나 부적격자로 확인되면 무순위 청약 방식으로 물량을 소화한다. 무순위 청약은 청약통장이 없거나 유주택자라도 만 19세가 넘으면 신청할 수 있다. 당첨 기록이 남지 않아 추후 1순위 청약을 넣는 데도 제약이 없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방안이 청약시장을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하는 데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것으로 내다봤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주택 보유 수에 상관없이 기회를 주는 무순위 청약보다 청약 가점이 낮은 1순위 자격자에게 청약 기회가 더 돌아가야 투자 목적의 청약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예비 당첨자를 늘리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중도금 대출이 막히면서 자금이 부족한 무주택자에게 청약은 당첨 기회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과도한 대출 규제 등 청약에 쉽게 나서지 못하는 요인들을 함께 해결해야 무주택 서민이 실질적인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석/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