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좌파도 애국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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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경제"라며 한가한 소리 하지 말고최저임금 올리고, 근로시간 줄이고, 공공부문 고용 늘리는 소득주도성장은 전형적인 좌파 정책이다. 자본주의 체제지만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매달렸던 정책이다. 좌파 정책이라고 하면 색깔론이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정책에는 이념이 있다. 현실을 인식하고 처방을 내리는 정책은 정부와 시장의 관계, 정부의 역할과 권한을 규정하기에 그렇다. 좌파면서 아닌 척하고 이념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기만이다. 정말 정책에 이념이 없다면 방향과 원칙을 상실한 것이기에 스스로 실패한다.
규제 풀고 노동 개혁해 돌파한 佛·獨처럼
좌파 이념에 쏠린 정책 서둘러 수정해야
김태기 < 단국대 교수·경제학 >
정책 이념과 경제 성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정부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좌파 정책보다 시장원리를 따르는 우파 정책이 성과가 좋다. 또 좌파 정책을 추구하는 나라도 어떤 좌파냐에 따라 성과가 달리 나타난다. 기술혁신이나 세계화는 좌파 정책을 실패하게 해 국가의 몰락을 재촉했지만, 나름 건재한 국가도 있다. 차이가 나는 이유는 좌파라도 ‘애국심이 있는가’ 여부에 달렸다. 건재한 나라는 나라의 미래를 위해 좌파 이념을 수정한 반면 몰락한 나라는 좌파 이념을 권력 유지에만 이용한 공통점이 있다.
프랑스는 노동 규제로 유명하다.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1981~1995)은 문재인 정부처럼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공공부문 고용 확대 같은 정책을 폈다. 그러나 (미테랑 본인은 개인적으로 내키지 않았지만) 동시에 프랑스의 미래를 위해 생산물시장 규제를 대거 풀었다. 노동 규제 강화로 근로자를 보호하더라도 일자리는 창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적자에 시달리는 국영방송을 민영화하고 금융과 보험 등에 경쟁원리를 도입하는 결단을 내렸다. 덕분에 프랑스는 서비스업 경쟁력이 높아졌고 앙숙인 독일과 대등한 수준의 국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독일은 사회민주당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개혁(아젠다 2010)으로 제조업 강국의 명성을 유지했다. 동·서독 통일뿐 아니라 고(高)인건비로 인해 일본은 물론 한국의 추격을 받았고 자본이 해외로 떠나면서 실업이 급증하는 어려움에 처했다. 슈뢰더는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로 돌파구를 찾았다. 복지국가의 후퇴로 받아들여지고 정치적으로 불리했지만 그는 “실업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재선될 자격이 없고 재선돼서도 안 된다. 개혁안을 사회민주당이 부결시키면 총리직을 사임하겠다”며 밀어붙였다. 덕분에 ‘유럽의 병자’라는 조롱은 ‘유럽의 슈퍼스타’라는 부러움으로 바뀌었다.브라질 노동자당의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2003~2011)은 노동조합주의자지만 내부 반발을 무릅쓰고 국제기구 권고대로 시장원리를 수용하는 개혁을 했다. 중산층은 실업과 물가 불안, 저소득층은 빈곤에 시달리는 브라질의 고질병을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로 타개했다. 외채문제도 해결하며 세계 8위 경제대국으로 키웠다. 그러나 룰라의 리더십도 브라질 부패의 덫이자, 인허가로 시장을 규제하는 사회주의의 고질병을 극복하진 못했다. 퇴임 후에는 후임자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뇌물 혐의로 처벌받고 있다.
그리스, 스페인 등 남부 유럽에 지난 10년간 경제위기가 집중됐다. 다른 유럽 국가가 생산물시장과 노동시장 규제를 완화하는 동안 좌파가 득세한 남부 유럽은 규제개혁을 외면했다. 위기가 닥치면 개혁에 나섰지만 시늉하는 수준에 그쳐 ‘나쁜 제도’를 바꾸지 못했다.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라 재정을 확대해도 효과가 작았고 정부 부채만 쌓였다. 위기가 악화되면서 정당이 난립하고 정치 분열이 커지면서 개혁의 동력은 약화됐다. 위기의 주범인 제도의 실패를 정치가 초래했기에 남부 유럽은 정치가 경제를 망친 사례로 꼽힌다.
소득주도성장의 성적표는 참담하다. 불과 2년 사이 실업률은 3%대에서 5%대로 높아졌고, 최상위소득계층 임금은 10% 이상 올랐지만 최하위소득계층 임금은 20% 가까이 떨어졌다. 그리고 1분기 경제성장은 마이너스(전 분기 대비 -0.3%)를 기록했다. 미국과 일본은 최대 호황을 누리는데 한국엔 경제위기의 경고등이 켜졌다. “평화가 경제”라며 한가한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 북한에 기울이는 정성의 10분의 1이라도 경제를 살리는 데 기울여야 한다. 한국의 집권 좌파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좌파도 애국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