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배터리 수주전'이 LG화학·SK이노 소송 방아쇠 당겼다

공개 소장 "LG화학 1조원 이상 손실"…SK이노 美공장 차질 가능성

최근 불거진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소송전의 중심에는 '전기차 매진'을 선언한 독일 폭스바겐에 대한 '배터리 수주전'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12일 미국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이 최근 공개한 소송장에서 LG화학은 "폭스바겐의 미국 전기차 사업 (수주전에서) SK이노베이션의 '승리'(win)가 LG화학의 사업을 제약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영업비밀 침해로) 수십억 달러 규모의 폭스바겐 공급 계약을 비롯한 잠재 고객을 잃었다"면서 "이에 따른 손실은 10억 달러(약 1조원)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언급했다.

앞서 LG화학은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에 대해 '2차전지 영업비밀 침해' 의혹을 제기하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전지사업 법인 'SK 배터리 아메리카'가 있는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LG화학이 소장에서 언급한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계약'은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이 폭스바겐으로부터 수주한 북미용 전기차 배터리 물량을 뜻한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은 폭스바겐으로부터 '선(先) 수주'를 받은 배터리를 생산할 미국 조지아 공장도 착공했다.

조지아주 공장은 1, 2단계 개발을 통해 오는 2025년까지 연 2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파우치형 배터리를 생산한다.당시 김준 총괄사장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2023년에서 2025년 사이에 글로벌 톱3에 진입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LG화학은 소장에서 기술 탈취가 없었다면 SK이노베이션의 폭스바겐 배터리를 수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장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3월까지만 해도 폭스바겐 수주전에 참여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하지만 인력을 빼간 이후인 같은 해 11월 폭스바겐의 '전략적 배터리 공급 업체'로 선정됐다.

소장에서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전 직원들은 폭스바겐 관련 제품과 기술을 다루는 곳에서 일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첫 삽을 뜬 조지아 공장에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델라웨어주 소송과 함께 진행되고 있는 ITC 소송은 미국으로의 수입을 금지하는 소송이어서 패소할 경우 완공된다 하더라도 공장 가동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침해 내용에 포함된 원재료나 국내 공장에서 생산된 샘플을 미국으로 가져올 때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폭스바겐 관련 기술이 소장에서 침해 내용으로 언급된 만큼 수입 금지가 조지아 공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다만 ITC 소송은 통상 당사자 합의를 이끌려는 경우가 많아 수입 금지까지 가기는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소송의 중심에 있는 폭스바겐은 2025년까지 최대 1천500만대의 전기차 양산 체제를 갖추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어 국내외 배터리 업계의 핵심 고객사로 꼽힌다.

SK이노베이션 뿐만 아니라 이미 LG화학, 도 배터리 공급사로 확보하고 있는 상태다.

소장에서도 "폭스바겐의 배터리 공급 계약은 2025년까지 400억∼500억달러(47조∼58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하며 국내 배터리 업계에 있어 폭스바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앞서 LG화학은 삼성SDI, 중국 CATL 등과 함께 폭스바겐의 유럽용 배터리 파트너사 가운데 하나로 선정돼 물량을 확보했지만, 폭스바겐이 배터리 내재화 전략에 따라 다른 배터리 업체와 합작법인(JV) 설립을 시도하면서 LG화학과의 '불화설'이 일기도 했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폭스바겐의 북미 물량을 수주한 데 이어 폭스바겐의 JV 파트너 대상으로 협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델라웨어 법원에 제기된 소송은 결론이 나기까지 2∼3년가량 소요될 것으로 전해졌다.

ITC에 제기된 소송은 아직 조사개시 결정도 나지 않았다.이달 내 조사개시 결정이 나면 내년 상반기 예비 판결, 하반기 최종 판결이 내려질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예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