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롯데몰 허가하라" 서울시 달려간 상암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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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던 소비자들 행동 나서지난 9일 서울 상암동 시민들이 서울시청을 찾아가 도시계획과와 공정경제과 실무자들을 만났다. 6년째 착공조차 못 하고 있는 ‘상암 롯데몰’이 들어설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구했다. 전통시장 상인들의 반대로 롯데몰 착공이 지연되자 자발적으로 결성한 시민단체 서부지역발전연합회의 신종식 회장과 간부들이었다.이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망원시장 상인들의 이해보다 상암동 인근에 사는 시민들의 편익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침묵하던 소비자들이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창원선 스타필드 유치모임 결성
백화점 마트 등 대형 시설 입주를 위해 적극적 행동을 시작했다. 인터넷 카페를 결성해 여론을 모아 지방자치단체를 압박하고 있다. 서부지역발전연합회의 네이버 카페 회원은 6000명을 넘어섰다. 서울시청과 마포구청, 국회 등을 찾아다니며 롯데몰 착공을 허가해달라고 요구했다. 경남 창원에 들어설 스타필드 부지 인근 주민들도 착공이 늦어지자 ‘스타필드 지지자 시민모임’을 결성했다. 회원은 2000명에 달한다.이런 움직임은 지자체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냈다. 서울시는 신 회장 등에게 “조속히 결론 내겠다”고 답했다. 창원시도 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해 7월 말까지 무조건 결론을 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동안 유통업체를 압박하던 상생정책의 과실이 소수 시장 상인에게만 돌아가자 소비자들이 자신의 이해를 위해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우리도 편리하게 살 권리 있다"…유통 규제에 커지는 주민 반발이명박 정부 때 상생과 동반성장이 중요한 이슈가 됐다. 극심해지는 양극화의 해법 가운데 하나였다. 그 결과 2010년에는 동반성장위원회라는 조직까지 등장했다. 이후 약 10년간은 상생정책에 대놓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 과정에서 유독 유통업체들은 수난을 당했다. 점포를 내려면 의무적으로 상생안을 내놔야 했다. 인근 시장 상인은 물론 강 건너 주민들의 요구사항도 들어줘야 할 정도였다. 유통 대기업에 붙은 ‘유통 공룡’이란 수식어는 골목상권의 포식자라는 함의가 들어 있다. 그 결과 신규 점포 출점은 확 줄었다. 점포 예정지 인근 소비자들은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이런 소비자들이 달라졌다.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누구를 위한 10년간의 상생이었나’를 물으며 행동에 나서고 있다.
官 태도 바꾼 주민들
“상생도 좋지만 우리도 편리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큰 목소리를 내는 소수만 중요한가요? 우리가 다수입니다.”
서울 상암동을 중심으로 수색·증산 등 서부권 주민들은 2년 전 ‘서부지역발전연합회’를 결성했다. 롯데몰의 조속한 착공을 촉구하는 모임이다. 이 모임 대표인 신종식 회장은 롯데몰 착공이 지연된 것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 모임의 네이버 카페 회원수는 12일 기준 6169명에 달한다. 연합회 결성 후 이들은 서울시청, 마포구청 등 지방자치단체 청사에서 항의집회를 열고 국회 토론회에도 참석했다. 지난 9일엔 서울시를 찾아갔다. 신 회장은 이 자리에서 “상암몰이 들어서면 청년 일자리 7000개가 생긴다는 연구 결과가 있고 대부분 주민이 원하고 있다. 망원시장이 영향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부지에서 3㎞나 떨어진 만큼 같은 생활권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연합회는 “상황이 달라진 만큼 실망스러운 답을 드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답을 얻고 돌아왔다. 신 회장은 “만족할 만한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에서도 장기전이나 무산 수순으로 가는 듯 보였던 스타필드 인허가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창원스타필드 지지자 시민모임’의 역할이 컸다. 안상수 전 창원시장이 지난해 6·13 지방선거를 통해 물러나고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허성무 시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허 시장은 “인구 대비 판매시설이 많은 창원에서 (스타필드 허가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모임을 결성해 스타필드 설립 여론을 모아갔다. 그 결과 창원시는 공론화위원회를 발족해 7월 말까지 결론을 내기로 했다.
전북 전주시가 최근 입장을 바꿔 롯데가 주도하는 전주 종합경기장 부지 재개발 사업을 허가한 것도 여론을 의식한 것이라는 게 유통업계의 분석이다.
직접 나선 소비자들
소비자들이 직접 나선 이유는 편의성과 부동산 가격 상승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스타필드 하남점이다. 신세계그룹이 2016년 9월 문을 연 스타필드 하남점은 5000여 명을 직접 고용했다. 이 가운데 30%는 지역주민에게 우선 채용의 기회를 줬다. 아이를 키우는 가정을 위해 장난감을 무료로 대여해주는 ‘장난감 도서관’도 설치했다. 생산유발효과는 3조4000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는 1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인근 아파트 가격이 들썩였다. 미사강변센트럴자이 96㎡는 2014년 분양 때 분양가가 5억여원이었지만 스타필드 입점과 아파트 완공 입주 시점이 겹치면서 6억2000여만원으로 뛰었다.
하남 사례를 본 다른 지역 주민들은 “우리도 대형 쇼핑몰을 원한다”며 행동에 나섰다. 이는 지자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규제 일변도였던 관(官)의 태도도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기대도 크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찬성 여론이 거세지고 이들이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표(票)가 된다고 판단하면 풀리지 않던 인허가 문제가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선거라는 변수
하지만 여전히 상암 롯데몰과 창원스타필드가 제대로 들어설지는 불투명하다. 선거가 임박하면 지자체와 정치권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롯데쇼핑은 지난달 서울시에 공문을 보내 인허가 문제를 풀어주지 않으면 서울시가 땅을 되사가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한 달 넘게 공식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여론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인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망원시장 상인회 소속인 서정래 비상대책위원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반경 1㎞가 전통시장 입점 규제 범위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초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면 10㎞에 걸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주민들은 재산권 때문에 찬성 의견일 수 있지만 상인들에겐 생존권이 달린 문제”라고 말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