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정위, SI '일감 몰아주기' 조사 착수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SDS 등 대기업 계열 시스템통합(SI)업체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실태 조사에 들어갔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대기업 계열 SI업체 50여 곳에 △내부거래 비중 △내부거래에서 수의계약이 차지하는 비중 등이 포함된 질의서를 발송했다. 이들과의 비교 분석을 위해 독립 SI업체 40여 곳에도 비슷한 내용의 질의서를 보냈다. 답변서 제출 시한은 이달 말이다. 업계 관계자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그동안 ‘SI업체를 계열분리하든지 총수일가 지분을 정리하라’고 압박해왔다는 점에서 조만간 현장 조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김상조 "일감 개방 서둘러야"
SI업계 "보안 지키려면 계열사와 거래 불가피"

공정거래위원회가 실태 조사 등을 통해 대기업 계열 시스템통합(SI) 업체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기업들에 보내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현장 조사 등 ‘실력 행사’에 나서기 전에 총수 일가가 S I업체 지분을 팔거나 일감을 외부에 개방하라는 것이다.

대기업 관계자들은 “답답하다”고 토로한다. ‘보안성’과 ‘효율성’ 때문에 SI 계열사와 내부거래를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는 주장이다. SI 업체들의 주력 사업이 그룹웨어 등 단순 시스템 구축에서 클라우드 서비스 등의 영역으로 진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계열 분리 등을 강요하는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는 지난해부터 기업들에 ‘SI 업체 내부거래’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사진)은 작년 6월 기자간담회에서 “총수 일가가 SI 업체 등 그룹 핵심 사업과 관련 없는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일감을 몰아주는 행태가 더 이상 반복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의중은 지난달 말 발주한 ‘대기업집단 계열사와 소속 SI 업체 간 내부시장 고착화 원인 분석 및 개선방안 마련’ 연구용역 과업지시서에서 확인된다. 공정위는 발주 목적에 대해 “대기업 계열 SI 업체들이 일감몰아주기에 힘입어 부당한 경쟁상 우위를 얻으면서 역량 있는 독립·중소 SI 업체들의 성장 기회가 제약될 우려가 있다”고 명시했다. 또 “부당 내부거래를 근절하고 독립·중소기업들이 공정한 사업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법·제도 개선 방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공정위 주장대로 대기업 계열 SI 업체의 내부거래 비중은 높은 편이다. 60개 대기업집단 소속 SI 업체들의 내부거래(매출 기준) 평균 비중(2017년 기준)은 67.1%다. 4대 그룹 소속 SI 업체들의 내부거래 비중도 40.3~91.7%에 달한다.

“이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는 게 SI 업체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SI 계열사가 담당하고 있는 그룹 내부 정보기술(IT) 시스템은 사람의 몸으로 치면 ‘혈맥’과도 같은 만큼 외부에 함부로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한 SI 업체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LG CNS에 내부 IT 시스템 구축을 맡길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보안이 크게 필요 없는 SI 업무를 중소기업에 개방하라”는 주장도 비현실적인 얘기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을 가장 효율적으로 하는 곳이 계열 SI 업체인데 굳이 외부에 맡겨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보안이 덜 필요한 업무를 찾아내는 일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압박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사업 기회를 빼앗는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재계 고위관계자는 “과거엔 단순 전산 작업을 하던 SI 기업들이 지금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에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첨단 기업이 됐다”며 “SI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은 4차 산업혁명 분야를 포기하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기업들은 SI를 일감몰아주기 예외 업종에 넣는 것을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SI 업체 관계자는 “내부 일감을 몰아줄 수밖에 없는 사업이라면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정부는 ‘쉽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한때 ‘SI 업종은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예외로 지정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공정위가 국회에 제출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이런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오히려 공정위가 일감몰아주기 규제 적용 기준을 강화해 대기업집단의 내부거래를 더욱 옥죌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황정수/오상헌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