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기업인들 "분배 치우친 사회 실패"…사회주의 열풍에 일침

글로벌 리포트

확산되는 사회주의 바람에
우려 잇따르는 美
“나는 열성적(card-carrying)인 자본주의자다. 시장 시스템과 법치가 없었다면 내가 지금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지난 4일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벅셔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한 말이다. 미국 젊은 층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사회주의 바람에 대한 경고다.‘투자의 대가’가 언급할 정도로 미국에선 사회주의 정책이 인기를 얻고 있다. 민주당 좌파들은 부유세와 무상 의료보험 도입, 학자금 대출 탕감 등에 이어 기본소득 도입, 구글 아마존 등 거대 정보기술(IT) 기업 해체 등 사회주의적 성격이 짙은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버핏 회장뿐 아니라 미국 최대 금융회사인 JP모간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레이 달리오 최고경영자(CEO) 등도 잇따라 우려를 표하고 있다.

목소리 커지는 사회주의지난해 8월 미국 갤럽의 여론조사에서 18~29세 연령대의 사회주의 선호도는 51%에 달했다. 자본주의 선호도 45%보다 높게 나왔다. 2010년 자본주의 선호도는 68%였지만 지난 8년간 급락했다. 블룸버그 조사 등에서도 사회주의에 대한 선호도는 비슷하게 올라갔다.

사회주의의 인기는 지난해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도 확인됐다. 28세의 전직 바텐더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뉴욕주 제14선거구에서 득표율 78.2%로 당선돼 신드롬을 일으켰다. 작년 6월 뉴욕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현역 10선 의원이자 민주당 내 서열 4위이던 조지프 크롤리 의원을 꺾은 데 이은 정치적 이변이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무상 등록금과 무상 의료보험, 마리화나 합법화 등을 내건 오카시오코르테스의 당선은 미국 내 사회주의 부상을 의미하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

미국 내 사회주의 부상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도화선이 됐다.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Fed)은 위기를 일으킨 월스트리트의 거대 금융사에 수조달러의 혈세를 투입했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대신 미국인들은 10%가 넘는 실업률에 시달려야 했다.이는 2016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의 인기로 이어졌다. 샌더스 의원은 부유세 도입을 주장하면서 스타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2016년 대선에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2017년 말 소득세 최고 세율을 30%대로 낮추는 등 감세를 시행하면서 ‘부자 감세’라는 비판을 받았다.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연방상원의원 등 민주당 좌파들은 △부자 증세 △대학 학자금 대출 탕감 및 공립대 학비 면제 △구글 등 기술기업 분할 등을 주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 워런 의원은 최근 아마존 등 거대 기술기업 해체를 주장한 데 이어 “미국 경제에 해악을 끼친 기업 CEO에 대해 형사 책임을 확대해 구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지난달 《민중, 권력 그리고 이익》이라는 책을 펴내 “자본주의의 미국 체제가 무너졌다”며 “정부의 힘을 키워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몇몇 기업이 전체 경제를 지배하면서 불평등이 급증하고 성장이 느려지고 있다는 것이다.우려하는 자본주의자들

버핏과 다이먼 회장 등 미국의 대표 경제인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다이먼 회장은 지난달 4일 이례적으로 51쪽에 달하는 ‘주주에게 보내는 연례서한’을 공개했다. 그는 “사회주의는 필연적으로 경기침체와 부패를 유발한다”며 “정부가 기업을 통제하면 경제적 자산은 점차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사용되고 비효율적 기업과 시장, 그리고 엄청난 편파성과 부패로 이어지게 된다”고 경고했다. 다이먼은 “(사회주의가) 시도된 다른 나라들처럼 미국에도 큰 재앙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켄 그리핀 시타델 창업자는 지난달 30일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자본주의는 부를 나눠주는 게 아니다”며 “분배에 치우친 사회주의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냉전시대를 거치며 옛 소련의 사회주의가 빈곤을 가져다줄 때 자본주의가 번영을 몰고 오는 것을 경험했다”며 “자유시장은 완벽하진 않지만 미국의 풍요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앨런 슈워츠 구겐하임파트너스 회장은 “세계화가 이미 보여주는 것처럼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논쟁에서 자본주의가 승리를 거뒀다”며 “그 논란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본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젊은 층에선 사회주의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전체 미국인으로 따지면 자본주의는 여전히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해 8월 갤럽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자본주의에 대한 선호도는 56%로 사회주의 선호도 37%보다 훨씬 높았다.

사회안전망 강화로 자본주의 부작용 보완

자본주의 옹호자들도 자본주의의 부작용은 시인하고 있다. 부의 불균형 등으로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회안전망 강화 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변화를 요구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목소리는 자본주의 모델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입은 기업 CEO들로부터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다이먼 회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교육 기회와 사법 정의가 미국인에게 균등하게 제공되고 있다고 누구도 주장하지 못할 것”이라며 이런 ‘총체적 실패’를 개선하기 위한 ‘미국판 마셜 플랜’을 제안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마셜 플랜으로 서유럽 재건에 나섰듯, 교육·의료·규제 시스템을 뜯어고치자는 것이다. 또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해 부자 증세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헤지펀드의 제왕’으로 불리는 달리오 CEO도 미국 자본주의의 오류가 교육, 사회적 이동, 자산, 소득 등에서 격차를 가져왔다며 이는 혁명을 부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 지도자들이 부와 소득의 격차를 국가비상사태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건강·교육에 대한 최소 기준을 확립하고, 부를 재분배하기 위한 세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버핏도 “자유시장 시스템은 적절한 규제를 받아야 하며, 소외된 계층을 지원하는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도 자본소득에 대한 세율을 두 배 이상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