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84%가 脫원전 찬성?…'부실 조사' 논란 부른 에너지정보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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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한국전력공사를 포함한 전력·발전 공기업이 줄줄이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 84%가 탈(脫)원전 정책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뜻밖의’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 2월만 해도 탈원전 반대 여론이 70%(조사기관 한국리서치)를 넘었는데 어떻게 된 사연일까.
질문마다 특정 답변 유도
재생에너지 친환경성 부각한 뒤
에너지전환 필요하냐 질문
"국민 돈 1억들여 편향정보 유포"
조재길 경제부 기자
이번 여론조사를 주도한 곳은 공공기관인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다. 2017년 11월 ‘원자력문화재단’이 정부 정책 변화에 맞춰 이름을 바꾼 곳이다.이 재단이 14일 발표한 ‘2019년 에너지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탈원전으로 대표되는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84.2%에 달했다.
여론조사기관인 메트릭스코퍼레이션에 의뢰해 지난 3월 11일부터 4주간 전국 만 19세 이상 국민 1000명과 원자력·석탄 발전소의 반경 10㎞ 이내 지역주민 2880명 등 총 3880명을 대면 조사한 결과다. 신뢰수준은 95%, 표본오차는 ±1.8%포인트(발전소 주변 주민)~3.1%포인트(일반 국민)다.
발전소 지역 주민을 상대로 찬성하는 전력원을 물은 결과 태양광(69.8%) 풍력(64.4%) 수력(61.2%) 순으로 높게 나왔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수용도를 조사했더니 태양광이 54.7%로 최고였고, 원전은 8.3%에 불과했다. 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국민이 원전을 가장 반대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하지만 탈원전 정책을 홍보하기 위한 전형적인 부실 조사라는 게 여론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질문마다 ‘특정 답변’을 유도하고 있어서다.
예컨대 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설문지에서 ‘에너지 전환 정책에 찬성하느냐’란 질문을 던지기 전 사실상 ‘교육’ 수준으로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에 대해 ‘석유·석탄 등 전통 에너지 의존에서 탈피해 태양광 등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에너지로의 확대를 의미한다’거나 ‘참여·분권형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새 일자리를 창출하며 신산업을 활성화한다’는 식이다.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이 에너지 전환 정책을 수립해 이미 청정성장 체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전제한 뒤 ‘에너지 전환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데 동의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사실상 답이 정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재단 측은 방문 조사원들에게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해 제대로 안내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문재인 정부 이전만 해도 단 한 건의 사고도 내지 않은 안전성,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성, 세계 정상급 기술 등 국내 원전의 우수성을 홍보하던 기관이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대표적인 반(反)원전 기관이 된 건 아이러니다. 재단 대표 역시 원자력계를 ‘원전 마피아’로 비판하며 환경운동에 투신했던 윤기돈 전 녹색연합 사무처장이 맡고 있다.
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이번 설문을 위해 약 1억원을 투입했다. 전기요금에 포함된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만든 예산이다. 재단은 국민이 부담한 돈으로 ‘치우친 정보’를 기획·유포했다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road@hankyung.com